치열해진 SK그룹 계열사 행보…'부회장들의 시대' 종언 예고?
입력 2023.07.24 07:00
    '올스톱' SK그룹, 최근 들어 다시 보폭 넓혀
    그룹 차원 독려보다 '각자도생' 분위기 짙어
    6월 회의서도 계열사 수장들 적극적 의견 개진
    부회장 세대교체 여부 주목…존재감 부각 포석?
    젊은 사장·임원 등 미래 이어갈 인사 많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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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 계열사들은 작년 하반기 이후 자본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 및 투자유치, 자산 매각 등 활동이 멈추다시피 했는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경직됐던 자본시장이 조금씩 풀리며 각 계열사들도 경쟁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다.

      SK온은 지난 5월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부터 조단위 자금을 유치했다. 작년 시기를 놓치며 애를 먹었지만 결국 성장 자금을 마련하게 됐다. SK하이닉스는 4월 2조원대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최근엔 신규 투자건을 검토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SK그룹 계열사의 행보는 갈수록 분주해지고 있다. SKC는 SK피유코어를 글랜우드PE에, SK엔펄스 파인세라믹스 사업은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려 협의 중이다. 지난 7일엔 반도체 테스트 부품 사업을 하는 ISC를 5224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바이오팜은 이달 표적단백질분해(TPD) 전문기업 프로테오반트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일 이천캠퍼스의 수처리센터를 SK리츠에 매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 E&S는 친환경 에너지 관련 투자를 유치하는 안을, SK에코플랜트는 환경기업들을 관리할 회사를 만들어 투자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팜테코는 6000억원 규모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를 진행하고 있다.

      불과 한 두달 전만 하더라도 금융사, 기관투자가들이 SK그룹 계열 한도를 고민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전벽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조단위 유상증자 카드까지 꺼냈다. 주주들의 반발이 작지 않지만, 어찌됐든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은 됐다는 것이다. 이 외 다른 계열사도 증자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SK쉴더스를 매각한 SK스퀘어가 추가 자산 매각이나 정리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언뜻 팬데믹 유동성을 경쟁적으로 끌어가던 2021년 이전 분위기와 유사해 보인다.

      다만 당시엔 그룹에서 ‘최대 규모 자본 조달’을 독려했다면 현재는 ‘각자도생’ 기류가 강해진 분위기다. SK그룹 차원의 목표 설정 작업이 다소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논카본(친환경)이라는 큰 줄기는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각 계열사에 맡기는 기조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선제적 아젠다만으로 돈이 몰리는 시기가 아니니 더 치열하게 ‘생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2023 확대경영회의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전까지는 그룹 최고위층 인사들이 사업 방향 협의를 주도했다면, 이번엔 각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을 이끌던 ‘부회장’들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진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 유정준·장동현(SK㈜), 박정호(SK하이닉스), 김준(SK이노베이션) 등 부회장급 인사들이 있다. 이들은 통신·에너지·반도체 등 핵심 사업을 이끌며 승승장구했다. 예전 부회장직은 커리어의 마지막 2년을 예우한다는 성격이었는데, 지금 부회장들의 영향력은 부회장이 된 후에도 공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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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회장급 인사들은 모두 1960년대 초반 출생으로 환갑 전후의 나이다. 이에 몇 해 전부터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기도 했지만, 그룹의 성장을 이끈 인사들을 외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이후 SK그룹 전반이 위기론이 휩싸였던 만큼 부회장 선에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시선도 있다.

      유정준 부회장은 임기(2024년 3월) 전에 SK E&S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미국 자회사 패스키(PassKey)를 이끌었는데, 올 상반기 패스키 대표이사 직도 내려놨다. 패스키는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이사회 의장과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있는 곳이라 유 부회장의 입지와 역할이 모호해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사업(솔리다임) 인수 후 재무부담이 커졌는데, 박정호 부회장은 솔리다임 정상화에 애를 먹고 있다.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은 작년 3월 물러났고, 작년 하반기엔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놨다. 이 전 사장이 솔리다임 인수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과거 SK그룹 수뇌부 회의는 조대식 의장 등이 각 계열사의 역할과 목표에 대해 명확히 지시했기 때문에 조용한 분위기였다”며 “그러나 올해 SK그룹 확대경영회의는 어느 때보다도 계열사 사장들이 치열하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이는 곧 기존 부회장들의 이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SK그룹을 이끌 후기지수들의 진용은 꾸려진 상황이다.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대부분 부회장들보다 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국내외 주요 행사 때마다 이들 사장들을 대동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인사들을 적극 중용하면서 지금 사장들의 뒤를 이을 임원군도 잘 갖춰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부회장들의 나이가 많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사장들로 세대 교체가 이뤄질 수도 있다”며 “SK그룹은 현재 사장 외에도 젊고 능력있는 임원들이 많아 자리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