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인수전은 결국 '빚잔치'…은행ㆍ증권사들 1조씩 투자실적 챙길 기회?
입력 2023.08.04 07:00
    HMM 몸값 6조원대 거론…후보들 자금력 부족
    자기 자금에 FI 초빙해도 수조원대 자금 필요
    성과 부진한 금융사들, 대규모 실적 쌓을 기회
    해운업황 하강 국면…상환 능력 면밀히 살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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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MM 매각이 속도를 내며 금융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인수후보들은 HMM 인수 자금을 홀로 충당하기 어려워 수조원의 차입성 자금을 조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사들은 올해 M&A 시장 침체로 일감이 부족했는데, 이번 HMM 인수전에서 어느 후보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대규모 금융 실적을 쌓을 수 있다.

      현재까지 HMM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하림그룹, SM그룹, LX그룹, 동원그룹, 글로벌세아그룹 등이다. 이들은 자문사단을 꾸리기도 하는 등 인수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기업집단 순위 19위의 HMM을 인수하면 재계 내 지위가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승계 구도를 탄탄히 하기 위한 성과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현재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가진 HMM 지분율은 40.65%인데, 두 회사는 오는 10월 만기 도래하는 1조원 규모 영구채도 주식으로 전환한 후 같이 팔 계획이다. 이 경우 인수자가 사야 하는 HMM 지분율은 57.88%까지 올라간다. 현재 시가총액에 대면 5조원 수준이고, 경영권 프리미엄이 얹어지면 6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기업들이 이 정도 자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가용 자산이 적지 않다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1조원, 아주 많아야 2조원 수준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재무적투자자(FI)를 초빙하고 금융사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이번 거래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하림은 JKL파트너스, 글로벌세아는 IMM PE와 손을 잡을 전망이다.

      FI를 끌어들인다 해도 블라인드펀드 활용엔 한계가 있고, 업황 불투명한 해운업에 투자할 블라인드펀드 자금이 잘 모아질지도 의문이다.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사로부터 수조원을 조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대형 금융사로부터 1조원씩 투자확약서(LOC)를 끊는다 해도 서너 곳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인수후보 측 관계자는 “HMM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체 자금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은 물론, FI 자금과 금융사 차입금까지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 인수 구조를 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작년 이후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관련 실적을 쌓기 어려웠다. 일부 대형 금융사가 좋은 거래를 독식한 사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감 기근에 시달렸다. HMM 인수를 원하는 기업들이 수조원의 대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보니 대형 금융사들이 관심을 갖는 모습이다. 인수후보들도 경쟁사가 어떤 금융사와 손을 잡는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임이 있었던 곳은 SM이다. 이미 작년부터 올해 HMM 인수전에 대비하기 위해 시중은행과 대형 증권사를 찾아 자금 지원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최근 HMM 구주만 4조~4조5000억원에 인수하겠다 뜻을 밝혔는데, 작년에도 금융사에 자기돈 2조원+차입금 2조원 구조를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 경험은 충분하지만 계열내 중소형 사가 많아 현금 조달력에는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영구채 상환 주장도 매각자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림(27위)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림지주가 거래를 이끌고 금융시장과 접점이 넓은 JKL파트너스가 주요 은행과 증권사로부터 자금 지원 제안을 받고 있다. 드러난 인수후보 중 가장 기업집단 순위가 높고, 팬오션 인수로 해운업 경험이 쌓인 점,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강점이다. 과거 팬오션 인수 때는 하나증권 등의 도움을 받았고, 이후 리파이낸싱 때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주관사로 나섰다. 일각에선 하림그룹이 ‘입도선매’에 나섰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동원은 한국금융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거론된다. 두 그룹은 한 뿌리였지만 계열분리가 돼 있어 자금 지원에 나설 수 있다. 증권은 물론 한투PE가 나설 경우 사실상 그룹 안에서 수조원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수천억원 수준의 한국맥도날드 인수도 주저했던 동원그룹이 수조원의 자금 부담을 지려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LX는 한동안 HMM 인수에 거리를 두다가 다시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IB)과 국내 금융사가 LX그룹을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세아는 현대LNG해운을 갖고 있는 IMM PE의 자금력과 경험에 기대를 걸고 있다. 태림포장, 쌍용건설 등 M&A를 추진하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권과 일한 경험이 있다. 

      금융사 입장에선 대규모 실적을 쌓을 기회기도 하지만 결국은 차주의 상환 능력을 최우선으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황이 하향 주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보니 사업이 더 나빠져도 돈을 갚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후보가 완주하고 승리할 것인지를 점찍는 선구안도 중요하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HMM 인수후보들의 금융사 줄세우기가 시작되는 분위기”라며 “금융사 입장에선 HMM의 업황이 꺾였을 때도 차입금을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복안이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