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현금 빼먹기’로 귀결될 HMM 인수전
입력 2023.08.07 07:00
    현대차·포스코 불참에 중형 기업간 각축전 예고
    부족한 재무역량, 결국 HMM에 기댄 LBO 전망
    HMM 자산 담보 제공 배임…배당금 수취는 가능
    법적 문제 없다지만 '정서적 저항'이 변수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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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MM 인수전은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의 불참으로 중형 기업들간 각축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의 재무 역량으론 수조원의 외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핵심은 HMM에 쌓여 있는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후보가 HMM의 곳간을 활용해 HMM을 인수하는 전략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법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HMM의 현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있다. 다만 M&A 이후 해운정책에 미칠 영향까지 따져야 하는 매도자의 상황, 혈세를 들여 키운 국적 선사를 현금 사냥꾼에 넘겨도 되느냐는 정서적 저항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돈 부족한 후보들, 믿는 구석은 HMM 현금뿐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구주 외에 1조원 규모 영구채도 주식으로 전환해 팔 계획이다. 이 경우 매각 대상 지분율은 57.88%까지 올라간다. 최근 시가에 대면 5조원에 달하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거래 규모가 6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림, SM, LX, 동원, 글로벌세아 등 드러난 인수후보들은 HMM보다 덩치가 작은 곳들이다. 수조원의 외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무적투자자(FI)와 금융사들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모펀드(PEF) 자금을 끌어오고 최대한 차입을 일으켜 HMM을 인수하더라도 그 후가 문제다. PEF에 수익률을 보장해줘야 하고, 금융사에도 적지 않은 이자를 계속 부담해야 한다. 금융사로부터 3조원을 금리 6%에 빌렸다면 매달 이자만 150억원씩 나간다. 이는 웬만한 대기업도 부담하기 벅차고, 빌려주는 쪽에서도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대부분 인수후보들은 HMM의 자금력에 주목하고 있다. HMM은 지난 2~3년간의 호황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쓸어담았다. 2019년 매출 5조5130억원과 영업적자 2996억원에 그쳤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파른 실적 개선이 이뤄졌고, 작년엔 매출 18조5827억원과 영업이익 9조9515억원을 올렸다. 2020년 1조원을 겨우 넘은 현금성자산은 올 1분기말 현재 13조원 이상이다. 이런 회사를 인수하는 데 6조원의 주식 값은 과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HMM 인수 해법 LBO, 배임죄 해당 가능성은?

      HMM 인수 후보들은 피인수기업의 재무 역량에 기대 M&A를 진행하는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 전략을 검토 중이다. M&A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HMM의 곳간에서 마련해야 하겠다는 것인데 실행 방식은 담보제공, 합병, 자산인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 그리고 배임죄 성립 여부다.

      LBO판결의 시금석이 되는 지난 2001년 건설회사 신한 M&A 사례에선 피인수기업인 신한의 부동산과 예금계좌가 금융사에 담보로 제공됐다. 반면 신한은 담보 제공에 따른 이익이 없고, 별다른 반대 급부도 제공받지 못했다. 차입매수자가 신한의 대표자가 돼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힌 셈이다. 대법원은 이런 방식의 LBO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인수후보들도 배임 부담에 ‘담보제공형’은 활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과 합병하면 기존에 빌린 인수 자금을 피인수기업의 현금으로 갚을 수 있다. 합병형 LBO는 2007년 한일합섬 M&A에서 활용됐는데, 대법원은 ‘합병의 실질이나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배임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합병 절차에서 주주와 채권자들을 보호할 장치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다만 이 경우 합병비율 산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고, 합병 반대 주주들이 대규모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기업 인수 후 유상감자와 배당 등 법에 허용된 수단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자산인출형)도 있다. 2008년 코너스톤PEF는 금융사와 매도인 측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대선주조를 인수했다. 이후 PEF는 대선주조 유상감자 및 고액의 배당을 통해 자금을 회수했고, 이를 차입금을 갚는 데 썼다. 대법원은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하며, 회수 자산을 채무 변제에 사용한 것도 위법이 아니라고 봤다. 상법상 절차와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 배임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 인수후보 측 관계자는 “다양한 LBO 방식을 검토해봤는데 배임 우려가 큰 담보제공형은 실행하기 어렵다”며 “대부분 HMM으로부터 배당을 활용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MM 인수 후 얼마까지 배당받을 수 있을까

      상법은 주주총회의 결의로 배당가능이익 범위 안에서 배당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주주의 권리로써 적성선의 배당을 결정하는 것을 법이 보장하고 있고, 이는 경영판단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1분기말 HMM의 현금성 자산은 13조원을 넘어섰다. 4조원가량의 차입금을 감안해도 9조원 이상의 순현금 상태다. 차입금엔 장기의 선박금융 등도 포함되니 당장 상환 부담이 크지 않다. 해운업황이 작년 정점을 찍은 후 올해부터 하향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당장 현금 보유량이 급락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이익잉여금을 배당으로 활용하는데 HMM의 1분기 이익잉여금은 10조원에 달한다.

      각종 투자 비용이나 업황 침체에 대비해 이 중 절반만 배당 재원으로 활용한다면 인수자의 재무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인수후보들은 자체 자금으로 1조원, 많아야 2조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 수조원을 HMM 배당금으로 충당해 상환할 수 있다면 ‘승자의 저주’ 우려에서도 멀어진다. 자금을 대는 PEF나 금융사는 회수 확실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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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M 매각 완료 시점에 따라 인수자가 챙겨갈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올해 거래를 종결하고 내년 초 바로 5조원 규모 결산배당을 시행하면 인수자는 지분율에 따라 약 3조원의 배당금을 받게 된다. 다만 거래는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내년 이후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에도 배당이 돌아가게 되면 인수자 몫의 배당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HMM에 적정 현금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주주평등 원칙에 의거해 배당하는 것은 경영판단의 일환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위험 없어도 ‘정서적 저항’은 별개 문제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 후 유일하게 남은 국적 원양선사인 HMM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매머드급 선박 건조 자금을 지원해 대형 선박동맹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그 투자 덕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 물동량 폭발의 수혜를 입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선복량 순위도 점차 올라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선대를 더 구축해야 하고, 컨테이너선 업황 침체를 완충할 다른 업종의 선사를 인수할 필요성도 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면 쌓아둔 현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재무 여력 부족한 기업들에 HMM을 내주면서, HMM의 곳간에도 손을 대게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형사적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회사 구성원과 시장의 ‘정서적 저항’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매도자 측에선 해운사 M&A 등 투자로 현금 보유량을 미리 줄이려 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HMM 매도자와 인수자 간 계약을 통해 배당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은행은 HMM 지분을 모두 처분하길 바라지만, 국가 해운정책도 신경써야 하는 해양진흥공사는 지분 일부를 계속 가져가며 견제에 나서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몇 년간 HMM 회생에 공을 들였음에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인수자가 배당을 노린다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매도자-인수자 계약을 통해 통상 배당률을 넘는 배당은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등 견제 장치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