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ㆍDLF도 빗겨간 국민銀, 127억 금융사고 배경은 'CEO 교체기'탓?
입력 2023.08.11 07:00
    증권대행 업무 직원들, 무상증자 정보로 투자 차익
    유동성 급등장서 무상증자가 주가에 호재로 인식돼
    2021년부터 범행 시작...윤종규 회장 '도덕성' 신년사 무색
    허인-이재근 행장 교체기 혼란도 영향 줬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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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임펀드 사태ㆍ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도 큰 이슈가 없었던 KB국민은행이 100억원이 넘는 금융사고에 휘말렸다. 금융권에선 그간 내부 단속을 잘 해오던 국민은행이 어떤 배경으로 사고를 냈는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해당 사고는 증권업무대행 부문에서 발생했다. 사고의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시기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증시 상황 변화와 함께,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의 혼란한 상황이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CEO의 장악력이 느슨해지며 구멍이 난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은행의 증권대행 업무 담당 직원들이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 총 127억원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는 내용을 확인해 검찰에 통보했다고 9일 밝혔다. 해당 직원들은 2021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2년 2개월동안 61개 상장사의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며 규모 및 일정 등을 미리 파악하고, 주식을 매수해놨다가 주가가 오르면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봤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상장사의 미공개 정보를 미리 취득해 선행매매를 했다는 점에서 은행보다는 증권사에서 일어날 법한 사고라는 평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은 고객의 자산이나 상품에 대한 모니터링에 집중돼있다"며 "이런 사례처럼 은행 직원이 정보를 활용해 차명으로 차익을 남긴 건 흔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증권대행 업무는 보통 증권사들이 맡아서 하지만, 대형 은행들도 기능을 갖추고 있다. 투자자 모집 등 전문성이 필요한 상장사 유상증자 업무는 보통 증권사의 업무로 통한다. 사무대행에 가까운 비상장사 유상증자나 상장사 무상증자 업무는 은행에서 취급하는 일이 적지 않다. 증권사에 비해 좀 더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평가다.

      상장사 무상증자의 경우 그간 큰 이슈가 되지 않아왔다. 무상증자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건 2020년 하반기부터다.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폭증으로 증시가 급등하며 무상증자가 재조명받았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이전까지는 차라리 배당으로 주지 왜 주식 수를 늘리냐는 인식이 강했는데, 유동성 급등장 이후 주식 가치가 폭등하며 무상증자를 선호하는 기류가 뚜렷해졌다"며 "무상증자 공시가 나오면 해당 종목이 상한가로 직행하기 시작한 게 2020년 하반기부터의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사고가 2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무상증자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정보로 여겨지지 않았던 분위기 때문일 거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사고의 시점을 두고 CEO 교체 시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내리고 있다.

      사고가 시작된 2021년 4월은 3연임 종료를 앞둔 허인 당시 국민은행장(현 지주 부회장)의 임기 만료를 반 년 가량 앞둔 시기였다. 허인 행장은 당시 차기 은행장을 선정하는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 위원이었다. 당시 대추위는 2021년 4월부터 6차례 회의를 열고 차기 은행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의 CEO를 잇따라 선임했다.

      2022년 1월 업무를 시작한 이재근 행장의 취임 일성은 디지털ㆍ플랫폼이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의 긴축이 시작되고 국내외 금융시장이 혼란한 와중에 핵심 업무 분야도 아닌 증권대행 업무에 손길이 닿지 않았을 거란 평이다. 

      실제로 이번 사고는 금융당국에 의해 적발돼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3월말 금융감독원이 국민은행 현장 검사를 진행하며 증권대행 업무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고, 3개월의 조사 끝에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은행 700억 횡령 사고 이후 은행 내 금융사고는 보통 내부 감사에서 걸러지는 일이 크게 늘어난 것과는 결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사고는 퇴임을 앞둔 윤종규 회장의 리더십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거란 지적이다. 윤 회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금융인으로서의 확고한 윤리의식과 준법의식'을 언급했다. 

      2020년 신년사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당시 라임펀드 사태ㆍDLF 사태 등으로 금융회사의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주목받던 시기였던 게 언급의 배경으로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 2021년부터 일부 직원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이 진행된 것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관련 조사에 대해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