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잠그는 해외 LP들…韓 펀드레이징 ‘훈풍’은 언제까지?
입력 2023.08.22 07:00
    조(兆) 단위 펀드 결성 이어지는 한국 시장
    美 상업용 부동산 붕괴 여파에
    대체 자산 줄이는 해외 연기금들
    글로벌 펀드레이징 금액도 감소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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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까지만해도 국내 사모펀드(PEF) 펀드레이징 시장은 말 그대로 혹한기였다. 정권 교체로 인해 정책 자금의 출처는 움추려들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불확실한 대외 경제 상황이 맞물리며 출자기관(LP)들은 보수적 기조를 강화했다.

      다행히(?) 올해 들어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하나둘 출자사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산업은행이 출자사업을 시작했고 자산관리공사가 새로운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며 대규모 블라인드 출자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요 앵커출자자들의 올해 출자사업이 일단락 된 만큼 하반기엔 교직원공제회, 노란우산공제회 사학연금 과학기술인공제회, 군인공제회 등의 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연기금·공제회들이 출자 사업을 재개하면서 국내 PEF 운용사들도 속속 펀드 결성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에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일부 민간LP들은 깐깐한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MG새마을금고 사태까지 겹치며 민간 출자자들의 지갑을 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예년에 비하면 확실히 펀드레이징 상황이 양호하단 평가가 나온다.

      현재 2조5000억원 이상의 5호 펀드 조성을 목표로 펀드레이징을 진행중인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이미 지난해 말 1조원에 가까운 1차 클로징을 완료했고, 한화 약 4조원 이상의 4호펀드 조성을 추진중인 한앤컴퍼니 또한 올해 2조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올해 2월 3호펀드에 이미 1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집해 1차 클로징 한 이후 추가 자금을 펀딩 중이다. 1조2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펀딩을 추진 중인 스카이레이크도 올해 7500억원 이상의 1차 자금 모집을 마무리 했다. 앞으론 VIG파트너스 또한 조단위 펀드 결성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펀드레이징 시장에 훈풍이 부는 한국과 달리 해외의 상황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출자 규모를 줄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글로벌 PEF 운용사들의 펀드 결성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탠다드앤푸어스 마켓 인텔리전스(S&P market intelligence)과 프레킨(Preqin)의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사모펀드가 올 상반기 조달한 자금은 약 444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5590억달러)와 비교해 20.5%가량 감소했다. 마찬가지로 전세계 연기금들의 사모펀드에 대한 출자 목표치 또한 채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미국의 연기금들은 사모펀드를 비롯한 대체투자 부문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단적인 예로 미국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는 최근 회계년도에 사모펀드와 부동산 투자에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는데, 저금리 기조에 사모펀드를 비롯한 대체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것이 최근의 수익률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연기금·공제회 등 주요 출자자들의 PEF 출자는 대부분 지분(에쿼티) 투자로 이뤄지지만, 해외의 경우 론펀드 출자와 같은 인수금융 성격의 투자도 활발하다. 국내 인수금융 시장은 시중은행, 증권사, 대형IB 위주로 참여자가 구성돼 있는데 사실 인수금융 투자 자산에 시가평가는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대체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민감도가 해외에 비해 덜 한 편이다. 

      반면 론펀드 등을 통해 인수금융 성격으로 투자한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부동산 또는 포트폴리오 지분 가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가치가 하락할 경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경향을 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위기, 실제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붕괴가 시작하면서 해외 연기금들이 잔뜩 움추리는 계기가 됐다 평가다.

      국내 대형 PEF 대표급 관계자는 "현재 해외 LP들의 PEF 출자는 한국 LP들과 비교해 상당히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당분간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출자로만 펀드를 구성해왔던 한앤컴퍼니는 처음으로 국내 펀드레이징을 시작했는데 최근엔 국민연금 블라인드 컨테스트에 참여해 위탁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IMM PE 또한 올해는 국내 펀드레이징에 좀 더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펀드레이징 시장의 한국과 해외의 괴리감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한국의 펀드레이징 시장의 훈풍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란 평가도 있다.

      국내 연기금, 공제회들의 해외 대체 자산에 대한 가치평가는 아직 제대로 반영 조차되지 못했다. 이미 내부적으론 가치를 제로로 반영해 손실을 확정한 기관도 있지만 대외적으론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거점 국가들의 대체 자산 가치 하락이 가속화할 수록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금고를 걸어잠궈야하는 상황이 빨라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