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고갈에 '비상금'으로 PF 이자 내는 시행사…"계약 위반에도 모두 쉬쉬"
입력 2023.08.22 07:00
    디폴트 대비해 시행사가 모아둔 비상금
    부동산 시장 회복될 것처럼 비상금 쓰는데
    "추후 디폴트 나면 손실 감당 어려워"
    대형 시행사도 유동성 고갈에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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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만기를 앞둔 시행사들이 한숨 돌리게 됐다. 일단은 '윈윈'이라는 판단에 금융기관은 PF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시행사는 디폴트가 날 경우 후처리 비용으로 남겨둔 '비상금'으로 PF 이자를 내고 있다. 계약 위반이지만, '심폐소생술'을 받고도 여전히 유동성이 부족한 시행사로선 어쩔 수 없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기관이 만기가 도래하는 브릿지론·본PF을 연장하는 추세라 전해진다. 브릿지론의 경우 특히 부실 규모가 크지만, 만기를 연장하는 게 '단기적'으로 금융기관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부동산 PF 대출채권의 자산건전성이 정상으로 분류되면 금융기관은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아도 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6개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중 올해 만기도래하는 금액은 14조원이다. 이 중 브릿지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58.4%로 하반기에 만기가 집중된 본 PF의 규모는 4조2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NICE신용펑가는 "PF 대주단 협약 등의 효과로 PF대출(본PF대출 및 브릿지론)의 만기 연장은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그러나 부실 사업장의 궁극적인 구조조정은 분양가 조정과 손실 분담 등을 통한 PF사업의 재구조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시행사들은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8월 말에 브릿지론 만기가 집중됐지만, 대다수 시행사가 유동성이 고갈돼 본PF 전환이 어려웠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팬데믹 시기에 사업 부지를 사들인 시행사 상당수가 올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거란 우려도 나오던 상황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1조6000억원으로 2020년(92조5000억원) 이후 매년 늘고 있다. 연체율도 올해 3월 말 2.01%로 ▲2020년 0.55% ▲2021년 0.37% ▲2022년 1.19% 대비 가장 높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행사가 '비상금'에 손을 대고 있다. 유동성이 고갈되니 비상금으로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쓰는 것이다.

      리스크가 확대된 만큼 대출 금리도 상향곡선을 그려왔다. 신규 발행 브릿지론 금리는 2021년 연 8~9%에서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인 20%까지 올랐다. 차환 비용도 커졌다. 시공능력이 낮은 시행사나 시공사의 사업장은 10%대 고금리를 얹는 방식으로 차환 자금을 구하러 다니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행사는 PF 사업을 시작할 때 '유보계좌'에 유보금을 넣어두고, 분양대금이 신탁사의 분양대금계좌에 들어오면 일부를 떼놓는다. 

      비상금은 계약서상 평소에는 건드릴 수 없다. 시행사가 디폴트난 경우 후처리 비용이 상당히 발생하는데, 비상자금은 기본적으로 이를 처리하기 위한 자금이다. 그러나 지금 PF 주체는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하거나, 당장 손해를 보지 않으려 '계약 위반' 사안을 쉬쉬한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상자금을 건드리는 건 보통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나타날 때"라며 "대출 이자를 갚는다고 비상자금을 써버렸으니, 추후 실제로 디폴트가 나면 각 PF 주체에 닥칠 후폭풍은 어마무시할 것"이라 밝혔다.

      대형시행사도 유동성 고갈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2년 매출액 기준 10위권 대형시행사는 최근 근질권을 설정해 자신의 채무를 담보할 만큼 자본금이 부족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속적인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확정 채권을 담보할 목적으로 설정되는 질권이다. 

      다른 대형시행사는 연대보증을 선 중도금 대출금을 대위변제하지 못하기도 했다. 중도금대출 대위변제는 수분양자가 은행에 대출받은 중도금을 시공사·시행사가 대신 갚는다는 의미다. 수분양자가 아파트 분양계약을 위해 중도금 대출을 받았으나 이후 입주하지 못하거나 등기를 마치지 못해 못갚기 때문이다.

    • 당분간은 당국의 부동산 지원 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들이 비상금을 끌어다써도 '큰 문제'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무조건' 회복될 것처럼 '베팅'하는 건 위험하다는 평가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전세가격 급락에 따른 역전세와 이에 따른 급매물 출회 가능성 ▲2021~2022년 대비 전국적으로 크게 증가할 2023년 아파트 입주예정 및 재고 물량이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하는 시기에 전세 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이미 약세를 보이는 전세 가격의 추가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현 정책은 확정되지 않은 손실을 뒤로 미루고 부동산 시장의 상승기를 기다리는 수준의 정책으로 성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지금은 각 PF 주체가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이상 미래에 찾아올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