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 한전 적자에 건전성 우려 커진 산은…기댈 건 결국 후순위채뿐
입력 2023.08.28 07:00
    한전, 전기요금 인상에도 사상 첫 누적적자 200조↑
    정부에 손 벌리기도 여러울 듯…"현재 출자 계획 없어"
    총선 앞두고 요금인상 '눈치'…한전채 발행도 못 늘려
    HMM 매각 기대 걸지만…사실상 '개선책'은 후순위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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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누적 적자가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한전의 모회사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의 건전성을 둘러싼 우려는 더욱 높아졌다. 정부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데 추가 한전채 발행과 HMM 매각도 난항이 예상된다. 사실상 하반기 산은이 기대를 걸 수 있는 방안은 후순위채 발행뿐이라는 관측이다. 

      한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연결 기준 총부채는 201조4000억원이다.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세다. △2019년 128조7000억원 △2020년 132조5000억원 △2021년 145조8000억원 △2022년 192조8000억원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증권가에선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 규모를 약 7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5차례에 걸친 전기요금 인상분이 반영돼 올해 3분기 10개 분기만에 처음으로 영업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연료비 및 차입금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으로 4분기 다시 적자전환해 연간으로는 7조원의 영업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한전의 적자가 늘면서 모회사인 산은의 고민도 더욱 커졌다. 한전 적자가 지속되면서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산은의 지분법 손실도 커지며 건전성 지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산은의 BIS 비율은 올해 1분기 말 13.08%까지 하락해 금융 당국의 권고치인 13% 선을 겨우 맞추고 있다. BIS 비율은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로,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BIS 비율이 바젤Ⅲ의 규제 하한선인 10.5%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신뢰도 하락으로 국제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산은은 BIS 비율 사수를 위해 상반기부터 리스크 관리에 열을 올려왔다. 5월엔 지역 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부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은은 3월 이사회에서 후순위채 발행 한도를 2조원으로 설정하고 4월 8000억원 규모의 조건부자본증권(후순위채)을 발행했다. 지난해 11월에도 5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말부터 발행 규모를 줄여왔던 산업금융채도 3월 7100억원 이후 4월(3조9700억원)부터 다시 발행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산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적자 폭탄'이 계속되면서 건정성을 둘러싼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금·현물출자 등 산은에 대한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오지만, 정부의 지원은 요원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정책적 지원보다는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란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지난 5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방식 현물출자를 진행한 뒤 추가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현금출자는 지난해 예산안에 계획된 대로 진행할 예정이며, 현물출자는 아직 정부와 따로 논의중인 바 없다"며 "상황이 급박하면 지난해 연말 수립한 경제정책방향과 별개로 현물출자가 가능하지만 아직은 따로 산은 지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 입장에선 한전이 자체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한전 앞에 놓인 선택지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전기료를 인상하거나 한전채를 발행해 자금 부담을 덜어야 하는데 모두 쉽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인상했지만 국민 부담을 고려해 올 3분기엔 동결했다. 한전의 '역마진' 구조를 고려할 때 4분기엔 재차 인상이 불가피하단 목소리가 많다.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은 변수다.

      한 국회 관계자는 "전기료 인상은 민심과 직결된 사안이라 섣불리 인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총선 전까진 전기료 추가 인상이 힘들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빚 돌려막기'인 한전채 발행도 정부의 방침에 반한다는 점에서 여의치 않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전채의 발행량은 11조4300억원으로 집계된다. 하반기에는 3조8100억원가량의 한전채 발행만 가능하다. 약 2년간 매월 발행된 한전채는 올 7월부터 현재(24일)까지 발행되지 않고 있다. 앞서 기재부는 하반기 한전채 발행과 관련해 "재무여건 개선 노력 등을 통해 장기사채 발행을 상반기 대비 3분의 1 이하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국이 정책방향을 조정해 한전채 발행량을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가 채권시장에 대거 풀리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게 된다.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 발행이 가능한 현행법(한국전력공사법)상 영업손실폭이 커지고 있는 한전이 무작정 한전채를 발행하기도 어렵다.

      결국 산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반기 발행이 예정된 7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뿐이란 분석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6월 1주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후순위채 7000억원을 발행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등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각종 자구안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산은 내부에서는 후순위채 발행을 앞두고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HMM이 계획대로 매각된다면 산은의 BIS 비율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의 인수 의지와 자금력 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매각이 완주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한 기재위 관계자는 "현 정부의 기조 자체가 '무조건적 지원' 보다는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란 분위기가 강하다"라며 "HMM 매각 결과에 따라 산은의 건전성이 큰 폭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어 일단은 결과를 지켜보자는 쪽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