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스시즌·이타카…'고가 인수'한 美엔터사 리스크 현실화
입력 2023.08.31 07:00
    CJ ENM, 美자회사 피프스시즌 투자 유치 나서
    적자 지속·작가 파업에 정상화 시점 불투명해
    하이브의 이타카, 주요 아티스트 결별설 계속
    '1조원' 엔터 빅딜들 '고가인수' 논란 재점화
    꺼진 '콘텐츠 거품'…'장기 시너지' 이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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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로나 팬데믹 기간 ‘K콘텐츠’ 글로벌 확장이라는 목표 아래 ‘1조원’을 베팅한 인수합병(M&A)들이 ‘아픈 손가락’이 되고 있다. CJ ENM이 인수한 미국의 제작사 피프스시즌은 적자가 계속되고 있고, 추가 투자 유치 작업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하이브가 인수한 미국의 이타카홀딩스도 소속 아티스트들의 결별설이 제기되는 등 ‘고가인수’ 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피프스시즌의 투자 유치를 검토 중이다. 신주발행 등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을 살피고 잠재 투자자들과 접촉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피프스시즌이 적자가 계속되고, 미국에서 작가 및 배우 조합의 파업으로 작품 제작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CJ ENM은 2021년 11월 피프스시즌(당시 엔데버 콘텐트)의 지분 80%를 7억7500만달러(약 9351억원)에 인수했다. 그룹 콘텐츠 M&A 중 가장 큰 규모로 주목받았는데,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9000억원을 추가 차입하면서 CJ ENM의 재무부담이 확대됐다. 

      피프스시즌은 최근 CJ ENM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피프스시즌은 작년 692억원, 올 상반기 935억원의 적자를 냈다. CJ ENM은 피프스시즌이 올해 24~28편의 작품을 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상반기 피프스시즌의 납품 편수는 3편에 그쳤다. 팬데믹 기간에 제작이 지연됐고, 이후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과 미국작가조합(WGA)이 동시에 파업을 하며 다시금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파업 종료 시점은 불투명하다.

      올초부터 CJ ENM 안팎에서 피프스시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전언이 나온다. 인수 실사 당시 일회성 비용으로 생각했던 요소들에 지속적으로 자금이 투입된 것이 문제가 됐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 ‘엔데버 그룹 홀딩스’ 산하의 제작사였던 피프스시즌이 모회사의 네트워크 지원 없이 원활한 제작 및 사업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프스시즌은 최근 올해 두번째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긴축 경영이 한창이다. 4월에 이어 최근 전체 직원의 12%인 30명을 해고했는데 임원급 인사들도 포함됐다고 알려진다. ‘콘텐츠’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인적자원인 만큼 연이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시선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피프스시즌)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기업가치는 인수 당시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이 아끼는 회사라 CJ ENM 측에서 매각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판다 해도 지금 시장 분위기에서는 사줄 곳을 찾는 것도, 제작이 멈춘 기업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엔터 업계 크로스보더 ‘빅 딜’인 하이브의 미국 이타카홀딩스도 최근 고가인수 논란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이달 미국 빌보드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하이브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인 스쿠터 브라운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끝냈다고 전했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2013년부터 스쿠터 브라운의 회사 이타카홀딩스 산하 SB프로젝트와 계약을 맺어 활동해왔다. 하이브는 2021년 4월 스쿠터 브라운이 설립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 이타카홀딩스를 엔터업계 M&A 최대 규모인 1조원을 투입해 인수했다.

      하이브는 인수 당시 “긴밀한 협업으로 고도의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기대와 달리 하이브와 이타카 소속 아티스트의 협업은 순탄치 않았다.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에 이타카 아티스트들이 입점할 것이란 추측도 있었지만 현실화된 것은 없다. 아직 별다른 시너지가 없었고 재무적으로도 기여한 바가 없다는 평이다. 이에 올해 들어 하이브 이사회 내에서도 해외 사업 리스크 관리 주문 목소리가 높아진 바 있다.

      물론 엔터사에 있어 해외 기업 인수는 네트워크 확대 의미가 크다. CJ ENM의 피프스시즌 인수 당시 ‘1조원짜리 할리우드 입장권’이라는 평이 있었다. 이타카 인수도 사실상 현지 유명 연예 기획자인 스쿠터 브라운 영입 차원이 컸다.

      다만 이타카 소속 주요 아티스트의 이탈이 계속되며 ‘1조원 투자’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난 1월 영화 ‘겨울왕국’ 엘사 목소리 역을 한 이디나 멘젤이 회사를 떠났고, 현재 저스틴 비버와 데미 로바토 등의 결별설도 제기되고 있다. 제이 발빈은 지난 5월 스쿠터 브라운과 계약을 종료했다. 등기임원인 스쿠터 브라운이 최근 하이브 주식 대량 매도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애초부터 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틴 비버 등 해외 주요 스타들은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며 “외국은 매니지먼트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도 하고, 위버스 입점 등 하이브 측에서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해외 엔터 기업 M&A의 거품론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엔터 미디어 사업의 특성상 장기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피프스시즌과 이타카 인수는 오너 및 최고경영진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거래였기 때문에 보통의 거래보다는 회복까지 충분한 시간이 부여될 가능성이 크다. 추후 인수 기업의 상황이 악화해도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