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에 펄쩍 뛰는 판매 증권사들…못마땅한 운용사와 '갈등 고조'
입력 2023.09.04 07:00
    금융 당국, 라임 사태 추가 검사…미래ㆍNHㆍ기업은행 도마 위로
    판매사 "모든 책임은 운용사에" 주장…정부 눈치보며 사적 배상도
    운용사 "평소 판매보수 챙기며 甲행사할 땐 언제고…책임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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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미래에셋증권의 라임펀드 환매 과정에서 위법성 의혹을 제기하며 추가 검사에 착수하자, 펀드의 판매사인 증권업계에선 '선관주의 의무'를 주장하며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규약변경 등 펀드 운용 대한 권한이 없는 판매사가 사태의 원흉으로 지적되는 상황에 억울함도 내비치는 분위기다. 

      반면 이를 지켜보는 펀드 운용사들은 내심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운용보수의 배가 넘는 판매보수를 챙기며 '갑'(甲)의 입장에 서 왔던 판매사들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모든 책임을 운용업계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이번 라임ㆍ옵티머스 사태로 펀드 판매사와 운용사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공모펀드 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검찰은 31일 라임 특혜환매 의혹 관련,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과 유안타증권을 압수수색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9년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유력인사가 포함된 라임펀드 환매 과정에 위법성 소지가 있다고 판단, 검찰과 함께 추가 검사에 착수했다.

      특혜 의혹의 수익자로 지목된 김 의원은 "증권사의 권고에 따라 펀드를 팔았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금감원은 미래에셋증권이 라임 펀드(라임마티니 4호 펀드)의 환매 중단을 한 달 가량 앞두고 가입자 16명에게 환매를 권유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같은 방식으로 농협중앙회에 200억원을 환매해준 NH투자증권, 디스커버리펀드 최대 판매사인 IBK기업은행 등 펀드 판매사들에 대한 전면 검사도 예고했다. 

      증권업계는 고강도 제재를 시사하고 있는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심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펀드가 수익률을 회복할 기미가 없을 경우 고객에게 정리를 권유하는 것은 선관주의 의무에 부합하는 영업 행위인데, 이를 고위 정치인과 엮어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판매 증권사들은 거대 야당과 정부 사이에 끼어 할 말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스로도 답답할 것"이라며 "이미 수사까지 다 끝난 일이었는데, 총선이 다가오니 정치인 이름과 엮여 환매 권한도 없는 판매사가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고 짖거했다. 

      당국의 제재 대상이 잘못됐다는 불만도 높다. 자기 자본이나 다른 펀드 잔고로 환매에 대응한 자산운용사들을 지적해야 할 사안인데, 단지 회사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증권사들에게 모든 배상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당국의 라임 수사가 확대되자마자, 신한투자증권은 환매가 중단된 젠투신탁과 라임펀드 투자자와의 '사적 화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젠투신탁 4180억원, 라임펀드 1440억원 등에 대해 일반투자자 100% 원금 반환과 전문투자자들에게 80% 이상의 배상을 제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펀드 환매와 관련된 규약을 변경하는 권한은 증권사에게 없다. 모두 운용사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도 운용사에 물어야 한다"며 "판매사는 위험고지 의무 불이행 등 불완전 판매를 한 것이 아니라면 배상 책임이 없는데, 당연히 판매사가 조치해야 된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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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처럼 증권업계에서 '운용사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운용사와 판매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그간 업계에선 펀드 판매사는 갑, 운용사는 을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운용사가 펀드를 잘 짜놓더라도 판매사가 걸어주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생 운용사나 소형 운용사의 경우, 증권사를 찾아가 펀드 판매를 요청해도 거부당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운용사가 수취하는 수수료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판매사가 선호하는 C클래스 펀드의 경우 선취 및 후취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판매 보수가 높게 책정됐다. 운용사가 판매사 대비 높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인 선취수수료형 펀드 역시, 평균 107bp의 선취수수료를 반영하면 판매사의 판매보수가 운용보수 대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판매사가 운용사가 훨씬 더 많은 보수를 가져갔음에도 관리감독 의무 등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운용사 직원도 "내부 컴플라이언스 문제로 불거지면 판매사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고 동조했다. 

      라임 사태가 다시 불거지자,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중소 운용사들 사이에선 펀드의 침체기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혜 의혹이 제기된 3대 펀드(라임ㆍ옵티머스ㆍ디스커버리)는 사모 투자 형태지만, 해당 사건의 여파로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일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펀드 업계 전반적인 판매 부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와 머니마켓펀드(MMF)를 제외한 일반 공모펀드의 순자산 총액은 이달 말 기준 약 53조원으로, 2년 전의 102조원 대비 이미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앞선 운용사 임원은 "금투협이 공모펀드의 부흥일 위해 구상하고 있는 '공모펀드 상장 추진'건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판매사를 통해 직접 가입했는 데도 이 같은 분쟁이 일어났는데, ETF처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 책임 소재 공방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