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직원들 로펌 만나지 말라 엄포…본인 대외 활동은?
입력 2023.09.15 07:00
    금감원장, 간부회의에서 로펌 만남 자제령
    로펌들, 금융회사 대리하면서 금감원과 부딪혀
    젊은 직원들은 전관들 안만날 명분 생겨 반색
    금감원장은 광폭 대외 활동하며 대조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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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당분간 법무법인을 접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로펌 만남 자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감원 직원들의 로펌행이 늘면서 지나치게 접촉이 빈번해지고 업무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원들에 '자제령'을 내린 금감원장의 대외 활동은 대조적이다. 금융사들의 해외 투자설명회(IR)에 거듭 따라다니며 주목을 받았고, 정치권 안팎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직원들은 자중하라면서 금감원장은 스스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모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일 법률시장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직원들과 로펌간의 접촉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이와 비슷한 지시가 있었지만, 이번엔 더 강하게 로펌과의 만남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자제령'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전 금감원 직원들과의 접촉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직원들이 로펌과의 만남에 신중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런 지시가 내려진 배경 중 하나로 금감원 직원들의 잇따른 로펌행이 꼽힌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0~2022년 로펌 취직을 위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재취업 시사를 받고 승인 결정을 받는 금감원 퇴직자는 29명, 금융위는 2명이었다.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이전만 해도 금융위 금감원 출신 로펌 취업자가 1명도 없을 만큼 로펌행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2020년 이후로 그 숫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2020년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발했다. 아직까지도 수사가 진행될 정도로 그 여파가 크다. 이를 판매한 판매사들과 해당 금융회사 CEO들이 제재를 받았다. 수차례 검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로펌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간의 전통 수익원 못지 않게 금융제재 분야가 로펌의 주요 먹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계기로 로펌의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비단 변호사뿐 아니라 간부급 인력을 전문위원으로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금감원에서 받던 연봉의 몇 배를 제시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직원들의 로펌행이 이어졌다. 취업제한으로 금융회사로의 이직이 막힌 상황에서 로펌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 중에선 화우가 가장 수혜를 봤다. 이명수 경영담당 변호사는 금융규제 분야를 로펌의 주요 비지니스로 만든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이 경영담당 변호사는 2000년 금융감독원 공채 1호 변호사로 약 10년 동안 금감원에서 분쟁조정국 감독정책과 공시심사실, 법무실을 거치며 법무팀장, 기업공시팀장 등을 거쳐 2010년 화우에 합류했다.

      이후 국내 금융사의 주요 분쟁 건을 도맡아 맡으며 금융규제 그룹을 키웠다. 사모펀드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로펌의 금융부문에선 M&A 자문 및 인허가 정도가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화우는 금감원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금감원 검사 등에 대응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금융규제 분야를 크게 키워냈다. 작년부터는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화우의 특별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과거엔 김앤장, 태평양 등이 금융감독 영역의 강자였지만 이제는 화우를 첫 손에 꼽기도 한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화우가 다른 대형로펌보다 좋은 처우를 제시하며 핵심 인재를 대거 영입했고, 이를 통해 금융 분야를 빠르게 성장시켰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장의 ‘로펌 만남 자제령’의 배경에도 화우를 비롯한 대형 로펌들이 금융회사를 대리하면서 금감원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져서 이기도 하다. 일부 로펌의 경우 전관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금융회사에 친분관계를 과시하고 이를 사건 수임에 주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금감원 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일부 수임에 애를 먹던 법무법인은 이번 '자제령'이 반전의 계기가 될까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에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금감원 조사에 대한 방향성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알기 위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라며 “CEO제재 등 굵직한 사안이 있을 경우 금융회사의 경우 작은 정보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복현 원장의 지시에 대해 젊은 직원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선후배들의 요구가 있어도 딱히 거절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확실한 '거절명분'이 생겼기 때문. 

      금감원이 업무량이 많은 조직인 데다 금융회사,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선후배 만남이 부가적인 일이라서 부담을 토로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금감원에선 과거 ‘김영란법’ 시행 시기에도 금융회사와 접촉을 자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이후 금감원 직원들과 금융회사와의 교류가 뜸해진 바 있다. 

      다만 업계와의 만남이 줄면 시장 동향 파악이 어려워지고,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업무 시간 외에 로펌으로 이직한 선후배를 만나는 것을 부가적인 일로 생각하는 직원들은 원장의 지시로 부담을 덜게 됐다며 반기고 있다"면서도 "외부와 접점이 줄면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까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직원들의 로펌접촉을 자체시킨 것과 별개로 본인의 행보는 이와 대조적이라 눈길을 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5월 싱가포르에 이어 지난달에도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을 대동한 해외 IR에 얼굴을 비췄다. 투자자를 만나는 자리에 '금융위원장'이 아닌 '감독당국' 수장이 나서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SM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카카오의 주가조작 혐의 조사에서는 검찰 못지 않은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라임 펀드의 특혜성 환매는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혀 야당이 반발하기도 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이복현 원장의 다음 행보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업무보다, 다음 행선지에 관심이 모이는 분위기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총선 출마' 질의에 이복현 원장은 '출마하거나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