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 이마트·백화점 수장 모두 교체 강수…이명희 회장의 '경고'?
입력 2023.09.20 16:53
    역대급 '물갈이 인사'…위기의식 고조 나타나
    강희석 이마트· SSG닷컴 대표 4년만에 물러나
    '이명희 회장 직속' 전략실 출신 인사 부상
    '중심' 다시 이 회장으로…자녀들 향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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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신세계그룹이 그룹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신세계는 계열사 대표 9명을 동시에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와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를 동시에 해임했는데 실적 악화에 따른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분석이다. 

      쿠팡의 약진 등 유통 환경 변화 속에서 조직 쇄신을 위해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칼을 빼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이 회장 직속 조직인 전략실 출신 인사의 부상을 이유로 사실상 신세계그룹 경영의 중심이 이 회장 체제로 돌아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20일 신세계그룹은 2024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진 것으로 9월에 인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계열사 대표이사의 약 40%를 교체한 이번 인사는 그룹 창사 이래 가장 인사 폭이 크다. 

      이번 인사로 그룹의 양대 축인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 대표이사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실적 악화로 지난해부터 거취가 도마에 오른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공동 대표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다. 강 대표의 임기는 당초 2026년 3월까지다. 손영식 신세계 대표도 임기 1년 반을 앞두고 교체됐다. 두 대표 모두 각각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의 두터운 신뢰를 받던 인사로 꼽힌다.

      새로운 대표 인사들은 그룹 전략실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그룹 내 2개 이상의 계열사들을 겸직하며 조직을 이끌 전망이다. 내부 출신의 잔뼈가 굵은 임원들이 신임 대표 자리를 채우면서 이번 인사에 이명희 회장의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는 평이 나오는데,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마트의 신임 대표로는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가 낙점됐다. 대표적인 전략실 출신 인사로 2001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경영관리팀 과장을 시작으로 2013년 전략실 관리팀 상무, 2018년 전략실 관리 총괄 부사장을 거쳤다. 한 신임 이마트 대표는 이마트뿐 아니라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오프라인 유통 사업군을 맡아 ‘3사 원(ONE)대표체제’를 이끈다.

      ㈜신세계 대표이사로는 신세계센트럴시티의 박주형 대표가 내정됐는데 박 대표는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도 겸직한다. 박 대표는 1985년 신세계 인사과 입사 후 2002년 경영지원실 상무보, 2011년 이마트부문 전략경영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쳤다. 

      신세계푸드와 신세계L&B는 신세계푸트 대표인 송현석 대표가 겸직한다. 신세계프라퍼티와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인 임영록 대표가 겸직한다. 

      '올드보이'의 귀환도 눈에 띈다. 1949년생인 이석구 현 신세계 신성장추진위 대표가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신임 대표는 스타벅스코리아를 11년간 이끌며 성장시킨 주역이다. 2019년 퇴임 후 2000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주(JAJU)사업 부문 대표로 다시 기용된 바 있다.

      이외에 마인드마크 대표엔 김현우 대표를 외부영입했다. 더블유컨셉코리아 대표는 지마켓 이주형 전략사업본부장을 내정했다. 

      이번 인사에는 계속된 실적 악화를 보이는 신세계의 위기 의식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의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점을 고려하면 문책성 인사로 해석된다.  강 대표의 갑작스러운 해임 배경에는 오너가의 신임을 잃은 것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2021년 G마켓(구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주도한 강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됐다는 평이다. 강 대표는 베인앤드컴퍼니 시절부터 함께한 김혜경 이마트 부문기획본부장 겸 온라인 TF장 전무와 함께 G마켓 인수합병(M&A) 전략을 맡았다. 4조원을 투입한 그룹 최대 빅딜이었던 G마켓 인수는 당시에도 그룹 내부에서도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지마켓 인수 이후 이마트의 재무부담은 크게 증가했지만 시너지는 여전히 미약하다는 평이 많다. 이에 이마트 내부에선 '이베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해서는 안되는 금기어가 됐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마트는 올 2분기 5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인사 이후 이마트의 이커머스 전략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상장이 지연되고 있는 쓱닷컴은 올해 ‘적자 축소’를 목표로 내건 바 있다. 이마트가 수익성 개선에 고전하는 사이 쿠팡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쿠팡은 이번 2분기에도 1분기에 이어 이마트의 실적을 뛰어넘었다. 2분기 쿠팡은 처음으로 이마트와 신세계를 합친 그룹 유통 부문 매출도 뛰어넘었다. 

      비교적 상황이 안정적이던 정유경 총괄사장이 맡고 있는 백화점부문(신세계)도 최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백화점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국 매출 1위’ 신세계 강남점도 지난달 매출이 꺾였다. 여기에 2위인 롯데백화점이 맹추격하면서 매출 격차가 좁혀지고 있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를 앞세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번 인사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흔들리는 조직을 바로잡기 위해 칼을 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드보이’ 귀환과 대표들의 2개 계열사 겸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각 계열사 수장 물갈이와 동시에 전사적 조직 재정비도 이뤄진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인사와 동시에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를 신설하고 산하에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쓱닷컴, 지마켓을 편제시켜 시너지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예하조직 및 본부장 운영에 있어서도 통합본부장 체계 도입, 시너지를 위한 하이브리드 조직체계, 업무영역별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한다.

      신세계그룹 측은 "조직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쇄신·강화하고, 새로운 성과창출 및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 인사를 단행했다"며 "앞으로도 철저한 성과능력주의 인사를 통해 그룹의 미래 준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