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PF 사업장에 끊임없이 인공호흡기 대는 당국
입력 2023.09.21 07:00
    취재노트
    정부의 '무한'한 PF 유동성 공급 정책에도
    사라질 기미 안보이는 PF 리스크
    "유동성 공급이 아니라 부실 처리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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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중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다시금 '구원투수'로 등판하려고 한다. 최근 금융위원회 주도로 5대 금융그룹(신한·우리·하나·KB·NH)의 부동산 PF 지원 펀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각 지주가 1000억원씩 총 5000억원 규모의 민간 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방침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당국의 압박으로 시중은행이 움직였다는 평가다. 은행들은 2011~2013년 PF 부실 사태 이후 부동산 부문 여신 취급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또 다른 압박도 있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금융지주의 계열사인 저축은행·캐피탈 등이 취급하는 PF 대출을 은행이 받아주는(대환) '정황'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돌려막기다. 저축은행·캐피탈은 부동산 위험노출(익스포저)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작년에도 레고랜드 사태, 롯데건설 유동성 이슈가 불거지며 정부는 금융시장의 마지막 '안전판'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을 무대로 올렸다. 작년 11월 5대 금융그룹은 금융위 주도로 총 95조원의 지원조치를 발표했다. 95조원의 지원계획 가운데 은행이 90조원가량을 출자하며 사실상 주체로 나섰다. 회사채 시장·단기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 확산 및 유동성 위축 방지가 목적이었다. 

      이외에도 부동산 PF 시장의 경색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그동안 수십건 이상 쏟아졌다. PF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PF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빠른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뇌관'일 뿐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고점을 찍은 2021년부터 이미 PF는 부실화하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터질 '폭탄'이었다. 폭탄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으며,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뇌관을 당기면 언제라도 터질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의 '뇌관 제거'가 아닌 '연명 치료'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PF 만기 연장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며 진작 무너졌어야 할 사업장을 살리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부동산 경기 회복만을 기다리며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현 상황에선 PF 만기 연장을 하더라도 사업성이 떨어진 사업장이 활기를 찾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PF업계에서마저 무의미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라리 리스크가 터졌을 때 손실을 감내하고 부실 사업장을 빨리 정리했다면 지금의 금리와 시장 상황에 맞는 투자가 새롭게 이뤄질 수 있었을 거란 평가다.

      부실한 PF를 털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무한'한 유동성 공급의 이유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을 꼽는다. 남은 임기 동안 큰 문제를 막고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한 정책이라는 평가다. 이에 정부의 PF 지원책이 내년이면 사그라들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도 심각한 수준이지만 이후에도 PF 유동성 공급이 이어지면 정부의 의도와 달리 더 큰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연명 치료에 실패하면 시행사·시공사부터 은행·증권사·운용사 등 금융권까지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부실한 사업장을 떠나보냈다면 일부 주체만 손실을 보고 그쳤을 일이다. 코로나 기간 막대한 유동성에 힘입어 이만한 손실은 감내할 수 있었을 거란 평가도 있다.

      최악의 경우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부실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새로운 투자를 검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시장 참여자는 부실만 이연하며 '폭탄 돌리기'만 이뤄질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주택 가격이 75% 폭락했으며, 정부는 만기 연장, 자금 공급 등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시장 지원을 했다"며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10년 넘게 가져가는 동안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을 털어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당분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단순히 유동성만 공급한다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