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남긴 산은, KAI 받은 수은…국책은행의 자본확충 '새옹지마'
입력 2023.09.21 07:00
    2016년 조선업 지원 부담에 수은 BIS비율 하락
    산은, 한국전력·LH·KAI 중 KAI 지분 수은에 출자
    이후 KAI 주가 폭락에 '산은이 알면서 줬다' 불만
    현재 KAI는 잘나가지만 산은은 한전 적자에 허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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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외 경제 정세가 출렁일 때마다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화제에 오른다. 정부가 예산으로 현금을 출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정부 보유 주식을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산업은행은 2015년 2조원 규모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전력(8000억원) 지분, 작년말과 올해 초에 걸쳐 LH 지분(1조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수출입은행도 올해 초 LH 주식(2조원)을 받아 자본을 확충했다.

      정부의 지분 현물출자는 실제 자금이 움직이지 않고 정부 재산만 위치를 달리하는 셈이다. 그 자체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효과가 있지만, 이후 실적이나 주가 등락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출자받은 기업이 손실이 나면 지분법 평가에 따라 그 손실이 지분율만큼 국책은행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산업은행은 한국전력 최대주주(지분율 32.9%)로서 자본적정성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한국전력은 작년 사상 최대인 약 33조원의 적자를 내며 산업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을 깎아 내렸다. 산업은행은 한국전력이 1조원의 손실을 낼 때마다 BIS비율을 6bp(0.06%)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BIS비율은 1분기 13%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2분기 후순위채 발행과 한화오션 매각 충당금 환입 영향으로 14%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실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대책이 없는 한 산업은행의 자본관리 부담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자본확충 방안과 시기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

    • 수출입은행은 산업은행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국책은행에 배분할 수 있는 주식은 공기업 주식이나 상속세 물납지분 정도인데, 과거 수출입은행이 한국전력 지분을 받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2016년 이후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본적정성이 훼손됐다. 그해 1분기 BIS비율이 9.8%를 기록하자 정부는 수출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기로 했는데 LH, 한국전력, KAI 등 주식이 출자대상으로 검토됐다.

      이 중 LH 지분 출자는 세금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수출입은행이 기존에 가진 LH 지분 장부가가 산업은행의 LH 지분 가격보다 높아, 출자 시 산업은행이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야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주식은 법이 문제가 됐다. 한국전력공사법은 정부가 한국전력 지분을 51% 이상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법에서 산업은행은 정부로 간주하지만 수출입은행은 그렇지 않다.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 시 지분율이 51% 미만이 되기 때문에 법을 먼저 개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이런 고민 끝에 산업은행은 KAI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기로 결정했다. 현물출자는 2016년 5월 5000억원, 이듬해 6월 1조1669억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주당 가액은 각각 6만6300원, 6만4100원으로 당시 주가 수준에서 정해졌다. 수출입은행이 KAI 최대 주주에 올랐다.

      문제는 KAI에 대한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수조원대 분식회계 혐의에 전 정권 차원의 방위산업 비리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KAI 주가는 급락해 한 때 3만원 미만으로 떨어졌다. 현물출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가 본격화하고 주가가 폭락한 터라 수출입은행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KAI 주식 평가는 원가법을 적용하지만 주가 하락 폭이 워낙 크다 보니 수출입은행은 가치를 재평가해 손상차손을 인식해야 했다.

      KAI 현물출자가 마무리된 지 6년이 지난 지금 두 국책은행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산업은행은 한국전력이 2018년 이후(2020년 제외) 대규모 손실을 이어가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반면 수출입은행은 한국전력 불똥을 피했고, 최근 KAI의 성과도 누리는 모습이다. KAI는 기체 및 부품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인공위성 등 신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방위산업 수출 지원을 위해 법정자본금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은 15조원인데 이 한도가 거의 차 있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은 동일 차주에 대해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 이상 자금을 빌려줄 수 없기 때문에, 대형 수출 계약에선 이 자본한도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으로부터 KAI 주식을 받은 후 주가가 폭락한 터라 수출입은행 내부에선 산업은행이 문제가 생길 걸 알면서도 KAI 주식을 넘긴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었다”며 “이제 와서는 KAI의 성과가 좋고 산업은행은 남겨둔 한국전력 지분 때문에 시달리고 있으니 새옹지마인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