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따라 배정됐다'...두산로보틱스 수요예측 후 엇갈린 운용사 희비
입력 2023.09.25 07:00
    新 수요예측 제도, 중소형사 '허수 청약' 원천 금지
    대형 공모주 두산로보 물량배정서 차이 크게 벌어져
    대형사 "만족"...소형사 "하이일드펀드 등 대안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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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운용역량이나 펀드 규모에 비해 배정을 너무 못 받았다는 걸 실감했다. 만족스러운 규모로 배정을 받았다. 3개월 의무보유(락업) 확약이 제일 많았고 우리도 3개월을 넣었는데, 확약 풀릴 때까지 증시가 무너지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한 대형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두산로보틱스처럼 큰 공모주에서 이렇게 물량이 나오면 벤치마크 지수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이 있는 펀드 등 다른 대안을 강구해봐야 할 것 같다." (한 중소형 운용사 공모주 담당 운용역)

      지난 7월 전면 시행된 수요예측 제도로 인해 운용사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공모 규모만 4000억원이 넘는 대형 공모주 두산로보틱스로 기관별 물량 배분 격차가 확실히 피부에 와 닿은 까닭이다. 허수 주문이 어려워지고, 회사의 덩치가 공모주 배정의 최우선 순위가 되며 중소형 운용사들은 대안을 고민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15일 수요예측 절차를 마무리하고 19일 공모가를 확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국내외 기관들에 대한 물량 배정 통보는 20일 오전 이뤄졌다. 두산로보틱스 수요예측엔 해외 기관 250여곳을 포함, 총 1920여 곳이 참여해 24억주, 확정 공모가 기준 63조원의 청약을 넣었다. 수요예측 경쟁률은 272대 1이었다.

      이번 수요예측은 관련 제도 변경 후 가장 큰 규모의 공모주 거래로 눈길을 모았다. 지난 7월 증권신고서 제출 기업부터 해당 제도가 적용됐지만, 공모 규모가 100억~200억원 안팎에 머무르는 중소형 공모주가 대부분이어서 제도 변경에 대해 '큰 체감'을 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두산로보틱스 수요예측 종료 후 기관들의 반응은 '확실히 바뀌었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큰 기관일수록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았고, 작은 기관은 제도 변경 전 대비 절반 이하의 물량을 받은 곳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이번 제도 변경이 '허수 청약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까닭이다. 

      새 제도는 기업공개(IPO) 주관을 맡은 증권사에 기관의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주금납입능력을 초과해 수요예측 참여한 기관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관 역시 자기자본 또는 운용자산(AUM)을 초과하는 규모의 청약을 원칙적으로 넣을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번 제도를 도입하게 된 계기로 꼽히는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 IPO때엔 수요예측에 1경5000조원에 달하는 기관 주문이 몰렸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10곳 중 9곳이 최대 주문 가능 규모인 9조5600억원을 제시한 까닭이다. 당시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한 군소 운용사조차 9조5600억원의 주문서를 써내며 '뻥튀기 수요예측'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는 공모주 일반청약과 비슷하게 청약 주문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하도록 돼있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물론 확약 여부, 해당 기관의 주금납입능력, 주관사와의 관계 등이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문 수량에 안분비례하는 게 일반적인 수요예측 물량 배정의 법칙이었다. 

      새 제도는 군소 운용사나 투자자문사의 경우 아예 '풀 베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만약 허위로 AUM 등을 제출하고 한도 이상으로 주문을 넣었을 경우 차후 최대 3년간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하는데다, 해당 기관 및 이를 파악하지 못한 주관사에 제재금이 부과된다.

      두산로보틱스 수요예측 이후 공모주로 상당한 수익을 내오던 중소형 운용사 및 자문사들은 살 길을 찾고 있다. 애초에 자기자본이나 AUM 면에서 대형 운용사와 비교를 할 수 없는만큼, 향후 대형 공모주의 경우 이번 같은 일이 반복될 전망인 까닭이다.

      이들은 일단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이 있는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벤처기업투자신탁(코스닥벤처펀드)와 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하이일드펀드)에 각각 30%, 5%의 코스닥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이 있다. 코스닥벤처펀드의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은 올해 일몰 예정이었지만 최근 2년 연장됐다. 특히 하이일드펀드는 코스피 공모주에 대해서도 5% 우선 배정 혜택을 받는다.

      물론 완벽한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이일드펀드는 자산의 60% 이상을 국내 채권에, 그 중 신용등급 BBB+ 이하 채권에 45%를 투자해야 한다. 코스닥벤처펀드는 자산의 50% 이상을 벤처기업 신주 및 코스닥 중소ㆍ중견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일반적인 펀드로 공모주에 투자할 때보다 운용 위험이 크게 늘어나는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소 운용사ㆍ자문사의 무분별한 공모주 '풀 베팅'이 IPO 시장의 질서를 해치고 공모주 주가 급등의 원인이 됐던만큼, 새 제도가 일정부분 정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큰 의미가 없는 수요예측 기간 연장 등 일부 개선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