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훈풍은 착시였나…거래 부진에 시름한 3분기 M&A 시장
입력 2023.10.02 07:00
    하반기 들어 시장 냉각…자문사 전반 '기근' 우려 지속
    규모 작고 실적 뚜렷한 산업 외 거래 성사 '지지부진'
    대기업은 자산매각·해외 증설로…회수기 PEF '미스매칭'
    연초 훈풍은 '착시'?…유동성 회수 여진은 아직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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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연초 예상 밖 활기를 띠며 호황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답답한 국면을 이어간 모습이다. 상반기 조 단위 거래를 휩쓴 투자은행(IB)이나 3분기 활약한 회계법인에서도 거래 성사가 지지부진하며 자리 불안·역성장 고민이 전해진다.

      금리 등 거시경제 환경뿐 아니라 회수기를 앞둔 사모펀드 운용사(PEF)와 관리 기조로 선회한 대기업 사이 미스매칭 등 문제가 더해지며 당분간 답답한 국면이 이어질 거란 목소리가 높다.

      3분기 M&A 재무자문 시장에선 외국계 IB가 종적을 감추다시피한 사이 삼일PwC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시장에 조 단위 안팎 바이아웃(Buy out) 대신 중소형 거래가 잔뜩 쏟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자금난을 겪는 대기업의 비주력 자산 매각과 전방 성장세가 뚜렷한 배터리·2차전지 등 기업의 투자 유치 외엔 성사한 거래가 적었다는 평가다.  

      상반기 중 묵혀둔 거래를 마무리 짓자 M&A 시장이 식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연초부터 메디트 외 오스템임플란트, SM엔터테인먼트 등 공개매수 방식 M&A가 깜짝 등장하며 시장이 활기를 되찾나 했지만 착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자그룹의 ABL생명보험 매각을 필두로 KDB생명까지 보험사를 위시한 금융사 M&A 파이프라인이 빈 자리를 채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1000억원대 안팎 중소형 거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미드캡(mid-cap) 시장에 한정된 얘기로 통한다. 외국계 IB 입장에선 본사 차원 수수료 하한선 규정이나 부족한 인력 상 회계법인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일감이다. 그러나 회계법인 역시 경쟁이 치열해지며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기업공개(IPO) 시장이 반도체나 2차전지 등 소위 '숫자가 찍히는' 거래에 한해 굴러가는 것처럼 3분기 들어 M&A 시장도 똑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라며 "이외엔 될 법한 거래도 시기가 밀리면서 외국계 IB도 일감 부족을 호소하는 분위기이고 그나마 메자닌 발행이 대안으로 부상한 정도"라고 전했다. 

      실제로 상반기 외국계 IB 중 가장 두둑한 수익을 올린 곳으로 SK하이닉스의 2조원대 교환사채(EB) 발행을 단독 주관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꼽힌다. 달리 보자면 3년 전 10조원대 M&A 일감을 제공하던 대기업 그룹사가 자금난을 겪는 상황이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주식자본시장(ECM) 사상 최대어를 낳았던 LG화학 역시 올해 석유화학 설비자산 매각을 고민하다 EB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 대부분은 M&A 시장 대신 해외 현지 생산설비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단일 최대 규모로 꼽힌 SK온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역시 증설비 확보를 위해 작년 시작한 거래가 올해 겨우 마무리된 구조였다. 간만에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까 주목받던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부진을 겪으며 자금 관리에 들어갔고 현대자동차 역시 해외자산 정리 수순을 밟았다. 지난 연말 네이버, 카카오를 시작으로 제조 대기업 그룹사까지 '확장 대신 관리'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PEF 운용사 입장에선 보유 포트폴리오를 받아줄 큰손들이 위축된 것이 아쉽다. 조 단위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한 대형 PEF는 회수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고, 성장산업 투자에 적극적이던 외국계 운용사 역시 버티는 것 외 방법이 마땅찮단 평이다.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나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 크레딧 펀드 등 대안을 마련해야 겨우 돈이 돌 거란 시각도 많다.

      출자시장 한 관계자는 "여력 있는 대기업도 불어난 해외 증설비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조단위 이상 매물은 글로벌 운용사에 넘기는 방안 외엔 회수 방도가 막막하다"라며 "투자 면에선 자금난을 겪는 SK·CJ·롯데그룹에서 기회를 엿보겠다는 PEF가 많은데 정작 출자자(LP)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침체와 호황 사이 오락가락하는 분위기가 지난 수년 시중에 풀린 유동성 회수의 후폭풍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탓이란 지적도 나온다. 올해 초 미뤄진 거래가 진전을 보인 것도 더 이상 손 놓고 있기 어렵다는 시장 관계자 사이 공감대가 만들어낸 일시적 훈풍이었다는 것이다.

      PEF 운용사 한 관계자는 "올 들어 M&A 시장 분위기가 냉·온탕을 오간 것처럼 보이지만 예상과 달리 잠재매물 전반의 가격 조정은 이뤄지지 않고 회수 성과가 필요한 대형 PEF가 행동에 나선 게 전부로 보인다"라며 "아직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플랫폼·바이오 등 부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진 분위기로 돌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