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욕심 못 버린 예보? '대한생명 선례' 피하려면
입력 2023.10.02 07:00
    취재노트
    美 2대 보험사 트레블러스 피어그룹 삼아 만든 PBR 0.95
    유통 물량 적다는 장점 내세워 공모 흥행 기대해보지만
    高밸류 논란 지속돼…공모가 하단 실패하면 철회 가능성
    공모가 욕심 부리면 주주 피해로…대한생명 선례 기억해야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서울보증보험(이하 서울보증)이 오는 11월 증시 입성을 목표로 증권신고서를 내고 본격적인 IPO(기업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약 25년전 외환위기 시절 투입된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의 공적 자금 10조원을 회수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에 돌입한 셈이다. 

      최대주주인 예보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공모로 조달한 금액을 공적자금 상환에 전액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IPO의 목적이 애초부터 기업의 성장성이 아닌 '예보의 엑시트'(자금 회수)에만 쏠려 있다 보니, 투자시장 반응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기관 투자자들과 금융회사 전문 연구원들 사이에선 "예보만을 위한 딜", "오버행(잠재적 과잉 물량 주식) 이슈로 상장 후 주가 하락은 기정사실" 등 부정적 말도 심심치않게 나온다.

      시장의 여론은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서울보증이 공모가 산정을 위해 적용한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약 0.95배로, 이는 국내 보험사인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해외 보험사인 코파스(Coface)와 트레블러스(Travelers) 등 4개 회사를 피어그룹으로 선정해 만든 수치다. 

      삼성화재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시장에서 2번째로 큰 상업재산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3번째로 큰 개인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트레블러스'를 비교대상으로 꼽은 것이다. 트레블러스의 시가총액은 약 50조원으로, 서울보증의 예상 최대치 대비 10배가 넘는 규모다. 매출과 순이익도 각각 35배, 6배를 뛰어넘는다. 

      트레블러스는 미국에서도 올스테이트, 프로그레시브 다음 가는 손해보험 부문 매출을 자랑하는 '공룡 보험사'다. 매출 1조원을 겨우 넘기는 국내 보증보험사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결국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엔 공모가를 조금이라도 높여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예보, 나아가 정부의 의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상장은 구주 100% 매출로 진행되며, 매출 물량은 모두 예보 지분으로 구성돼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일각에서는 예보가 온전한 공적 자금 회수를 명분으로 공모가를 욕심내다 상장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회의적인 분위기의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가가 하단(3만9500원) 이하에 형성될 경우, 공모청약 진행 여부부터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증권사에서는 서울보증이 제시한 공모희망가 밴드를 일종의 '감내 범위'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례도 있다. 과거 예보는 공적자금 3조5500억원을 투입해 서울보증처럼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살려냈다. 이후 대한생명 상장 과정에서 공모가격이 공모희망가 밴드보다 낮은 수준으로 확정되자, 구주 매출 규모를 예정 대비 3분의 1로 줄였다. 

      당시 예보는 2대 주주였다. 한화그룹이 주도하던 거래여서 상장이 성사됐지, 만약 예보가 주도하는 상장이었다면 당연히 철회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당시 증권가에 돌기도 했다. 

      예보의 예상 외 행보로 한화생명은 상장 이후에도 오랫동안 오버행 이슈를 떠안아야 했고,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을 유지해왔다. 8000원대였던 상장가는 꾸준히 하락하다 800원대로 폭락, '동전주'가 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한화생명(3000원대)은 아직까지도 경쟁사인 삼성생명(7만원대) 대비 낮은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

      한화생명의 주가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예보가 공모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구주 매출 규모를 줄인 대가를 두고두고 치르고 있다"는 평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금융위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 금융안정계정 사업 통과 법안(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했던 것도 서울보증 공모가 논란과 맞물려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안정계정은 예보 내 기금을 활용해 금융회사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예보는 금융사들에게 대출ㆍ지급보증 외에 출자 지원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금융업권에서 예보의 존재감을 무한히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의 반대로 수차례 무산됐으나, 최근 정부 권한으로 다시 법안소위에 올라와 정무위 파행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금안계정 건과 서울보증 상정 건을 두고, 금융권에선 예보의 무리한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보 직원들 역시 성과에 대한 내부 압박이 심해져 고민이 많다는 후문이다.

      결국 공무원들은 상장 철회 또는 대규모 지분 '블록딜'로 원할 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투자자와 예비 주주들이 남아서 치러야만 한다. 서울보증이 한화생명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 상장을 마치려면, 예보의 공모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선결조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