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으로 미뤄진 자본시장 반등…연말 정기인사도 삭풍 예고
입력 2023.10.06 07:00
    작년부터 유동성 긴축…올해 반전 예상도 빗나가
    거래 기근 지속에 이른 파장까지…실적 쌓기 난항
    자문사·기업 모두 실적 부진에 인사 한파 가능성
    고금리는 상수? 내년엔 밀린 거래 성사 기대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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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작년 자본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침체를 겪었다. 올해는 달라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많았지만 기대는 예상보다 더 이른 시점에 무위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일찌감치 파장 국면에 접어들며 올해 남은 기간 괄목할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워졌다.

      자본시장 참여자와 기업을 이끄는 경영진들은 여느 해보다 싱숭생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반등을 예상하고 짜둔 실적 목표는 물건너갔고, 역점 사업은 무산되거나 미뤄진 경우가 많아서다. 작황이 시원찮다 보니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찬바람이 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자본시장의 봄, 온기는 내년에나 기대

      작년 자본시장은 하반기로 갈수록 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각국의 시장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투자나 거래가 쉽지 않았고,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이 겹치며 최악의 유동성 불안을 겪었다. 올해부터는 점진적인 회복 국면이 예상됐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분위기다.

      올해 1분기만 해도 대형 거래들이 잇따라 성사되며 회복 국면에 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거래에 국한됐을 뿐 중소형 거래 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잠시 훈풍이 부는 듯했던 채권시장은 한전채와 금융채 등 물량 부담에 금세 식었고, 하반기 주목받는 기업공개(IPO) 시장은 일부 특정 테마주에만 온기를 허용하는 모습이다. M&A 시장은 지난 수년간의 호황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잠잠하다.

      올해 들어 각국의 시장금리 상승세가 둔화하며 장밋빛 전망이 많아졌지만 현재로선 극적인 분위기 전환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 기준금리는 상승세가 거의 멈췄지만, 당장의 금리 상승 여부보다는 지금의 고금리 상황을 얼마나 길게 유지하게 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미국의 핵심 관계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지금의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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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감안하면 당분간 극적인 금리인하나 유동성 완화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채권이나 주식, M&A 모두 팬데민 유동성 호황기의 영광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채권시장은 일찌감치 판을 거둬들이는 분위기고, 주식 시장도 일부에만 투심이 모이고 있다. 올해는 사실상 자본시장의 문이 닫힌 상황이다 보니 분위기 반전은 내년에나 기대해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 채우기 어려운 시장, 성과 평가도 찬바람 예고

      예년이라면 3분기 정도면 어느 정도 그해 실적 목표를 최대한 달성하고, 부족한 것은 4분기에 채워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일부 미리 잡아둔 일감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올해는 의미있는 실적을 채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연히 올해 주요 자본시장 주역들의 고과 평가도 박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찬바람이 부는 곳들도 있다.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는 M&A 자문사들은 올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M&A 시장의 터줏대감이던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IB들은 올해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시장 침체를 이유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펼치기도 했는데, 한국 사무소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 1~2년 호실적에 기대 승진 잔치를 벌였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를 전망이다.

      한 외국계 IB 임원은 “성사될 것 같은 거래들도 한 두 분기 계약이 밀리면서 실적을 챙기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이런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지면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역성장 우려가 커지던 삼정KPMG는 최근 최연소 재무자문 대표를 올리는 파격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감사와 비감사 부문 분사가 무산된 EY한영은 상당 기간 상흔을 치유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회계법인들도 실적 관리에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외국계 IB의 빈자리를 채웠다지만 실질적인 수익성은 보이는 것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들도 실적 유지가 어려운 분위기다. 송무, 자문, 세무, 공정거래 할 것 없이 대부분 영역에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일부 법인은 3분기까지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과 세종, 화우 등 내년에 경영진이 바뀌는 법무법인들은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M&A에 기반한 컨설팅사 역시 예년보다 일감이 급감해 실적 유지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이는 거래에 기대는 금융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래가 줄어드니 금융 수요가 줄었고 주선이나 참여 실적을 쌓는 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상반기에 대형 거래를 맡았거나, 아직 쌓아둔 일감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국내 IB의 먹거리를 책임진 부동산 분야도 작년 하반기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벌써부터 미매각에 따른 강등이나 책임인사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국내 IB 관계자는 “외국계 IB들은 작년 같은 승진 잔치를 벌이기 어려울 것이고 국내 증권사 IB들도 인프라, 부동산, 인수금융 등 부서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지금 쥐고 있는 거래가 있는 곳들은 실적을 인식하고 해를 넘기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자본시장 침체 직격탄…박한 논공행상 가능성

      기업들도 시장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연초부터 투자유치, 투자, 회수까지 청사진을 그렸지만 상당 부분 기업이 원하는 성적표를 얻지 못한 분위기다. 기업 경영진과 임원들이 시장 침체의 흐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면 후한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의 총아인 SK그룹은 작년에서 올해로 이어진 시장 침체가 뼈아팠다. 가장 먼저 방향성을 제시하며 시장 자금을 흡수해왔으나, 시장 침체 국면에선 그런 비전들도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개별 살림이 중요해진 계열사들은 저마다 실적 챙기기에 급급했으나 당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애를 먹는 모습이다. 연말 인사에서 대규모 쇄신 인사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인다.

      신세계그룹은 일찌감치 인사를 단행했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대표를 동시에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한동안 그룹 인사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인사로 다시 그룹에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최근 삼성그룹 출신 인사를 영입했다. 과거의 순혈주의를 뒤로 하고 앞으로도 파격인사, 쇄신인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미 부진한 계열사에 ‘해결사’를 내려보낸 CJ그룹은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LG그룹은 지난달 말 사장단 워크샵을 단행했다. LG는 상대적으로 큰 잡음없이 사업 전환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만큼 역동성이나 성과는 부각되지 않는 모습이라 정기 인사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5대 그룹 중에선 현대차의 성과가 가장 안정적이란 평가지만 세대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리더십에 의문 부호가 붙은 삼성그룹은 올해 인사에서 변화의 의지를 보여줄 것이냐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자문사나 금융사, 기업 모두 대규모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이나 자문사 모두 서로 임원진 진용이 대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초에는 서로 ‘얼굴 익히기’에 분주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이럴 순 없다”…내년엔 온기 돈다는 기대감도

      올해는 예년보다도 일찍 시장이 닫히는 분위기고 원하는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웠다. 예상보다는 고금리 상황이나 시장 위축 상태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반대로는 이런 침체 분위기가 무한정 이뤄지긴 어렵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미 한 두해 미뤄진 거래들이 쌓였고, 고금리 상황이 상수가 된다면 시장 참여자들도 그에 맞춰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 시장의 주력인 사모펀드(PEF)들은 꾸준히 펀드 결성에 나서고 있고, 지난 거래 춘궁기에 쓰지 못한 자금도 적지 않다. 글로벌 PEF들은 금리 부담에 정통 경영권거래(Buy out)보다는 세컨더리펀드, 사모대출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국내 PEF들도 이 추세를 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높은 값에 팔려는 매도자와 싸게 사려는 원매자의 시각차도 점차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 측의 피로감이 누적될수록 서로 손에 쥘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부 유망 거래에는 한 주 사이에도 몇 차례 추가 가격 제안이 들어오는 등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실적을 쌓아야 하는 금융사들도 최대한 금리를 낮춰주며 수요자의 요구를 맟춰주려는 분위기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까지는 별다른 성과 없이 지나가겠지만 언제까지 고금리 핑계로 거래를 마다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고금리가 상수가 되고 매도자와 매수인의 눈높이도 좁혀지면 내년부터는 일손이 바빠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