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엎친 데 '경남은행' 덮친 격…은행 투자부서, 보직 순환 압박에 한숨
입력 2023.10.06 07:00
    작년 우리 이어 올해 경남까지 대형 횡령 사고
    내부 통제 강화에 속도…핵심은 인력 보직 순환
    예외 인정받던 투자부서, 이번엔 포함될까 고민
    장기간 전문성 갈고 닦아야…당국과 조율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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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권에서 대형 횡령 사고가 잇따르면서 장기간 한 업무를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국과 은행권이 이를 두고 논의를 이어가는 가운데 투자관련 부서에서는 역효과가 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순환보직제가 강화하면 직원들이 투자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갖추기 어렵고 실적 유지나 위험 관리에서도 허점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작년 상반기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를 거쳐 직원의 대규모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이 직원은 기업개선부에 10년간 근무하며 8년간 8차례에 걸쳐 우리은행이 채권단을 대표해 관리 중이던 자금 약 700억원을 횡령했다.

      이전까지 소규모 사고는 드물지 않았지만 이 정도 대형 횡령 사건은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파가 컸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이 은행 내부통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섰다. 직원이 한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도록 보직을 순환하는 제도를 갖추자는 것이 핵심이다.

      작년 11월말 은행연합회 ‘인사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이 제정됐다. 이에 따르면 은행은 직원이 장기근무(동일 영업점 3년, 동일 본부부서 5년 초과 연속근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기업금융·리스크관리·법무·회계·기업RM 등)를 담당하는 직원은 장기근무 제한을 배제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뒀다.

      은행권에서 제도를 개선하던 중 또 다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한 직원이 2009년부터 작년까지 본인이 관리하던 17개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장에서 77회에 걸쳐 총 3000억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올해 드러났다. 이 직원도 한 부서에서 15년 장기로 있었는데, 스스로가 근무 기간이나 보직 순환 여부를 확인하는 자리라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장기 근무자의 대형 사고가 잇따르자 내부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장기근무 제한이나 순환보직제 강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독당국은 당초 2025년부터 이런 내용을 담은 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내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 일선 은행에선 시행 시기와 실행 범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예외’를 기대했던 투자 담당 부서들의 고심이 깊다. 어느 은행 할 것 없이 기업금융, 부동산, 인수금융, 인프라 등 분야는 장기 근무한 터줏대감들이 일을 이끌고 있다. 정해진 일을 하는 일반 지점과 달리 본점의 부서에서 도제식으로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경우가 많다.

      부서를 불문하고 보직을 순환하게 되면 그간 쌓은 IB 사업 역량을 유지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은행의 자체 역량이 전보다 줄어들면 증권사가 발굴하고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자금만 대는 종속적인 역할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 시중은행 투자 부서장은 “부서 불문 순환근무를 하라는 내부통제 강화방안은 당초 2025년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경남은행 사고가 터지면서 당장 내년에 앞당겨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대기업과 만나 일감을 따올 수 있는 허리 인력이 되려면 최소한 5년은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하고, 팀장으로서 후배들을 이끌려면 7~8년차 이상은 돼야 하는데 맥이 끊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당장 은행의 수익성 유지나 위험관리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도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일부 기업금융 부서를 제외하면 부동산, M&A, 인프라 등 사업 영역이 실적을 채우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은행 직원의 경험이 짧아지면 각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역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거취가 불확실한 상황이라 은행들은 내년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투자부서 직원은 “올해는 시장 침체로 만족할 성과를 내기 어려웠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년 영업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면서도 “내년에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는 4년차 이상 직원들에게는 밖에 나가서 내년 일할 만한 건들을 찾아보라 독려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은행들은 자체 내부통제 방안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 이자 이익 외 다양한 수익 창출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 기껏 끌어올린 투자은행(IB) 역량을 일부러 흩어버릴 이유가 없다는 점을 금융감독당국에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프라 등 은행 의존도가 특히 높은 영역은 보직 순환을 강화하면 시장 전체가 일시적으로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한 은행 업계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금융감독당국에 IB 인력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며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