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도 지적한 KB금융 승계...아직 '선진 선례' 멀었다
입력 2023.10.06 07:00
    Invest Column
    이복현 원장 "절대적 기준으로 괜찮은 것 아니야"
    평가 기준ㆍ방식 정한 후 후보군 정했어야
    KB금융 회장 선임 투명성 오히려 전보다 부족해
    "요건ㆍ절차 미리 정하고 공개해 불확실성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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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0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서 8년간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던 케네스 루이스가 갑작스레 사임했다. 케네스 루이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인수한 투자은행(IB) 메릴린치가 150억달러(약 20조원)의 막대한 손실을 낸데다, 메릴린치가 기존 경영진에 지급한 막대한 성과급을 숨겼다는 의혹으로 인해 뉴욕주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으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해왔다.

      CEO의 갑작스런 사퇴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후임 CEO 선정까지 3개월이 넘게 걸렸고, 그 사이 리더십 공백이 이어졌다.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경영권 승계계획 마련을 CEO와 이사회의 의무로 포함시켰다. CEO 선임 기준 및 절차를 사전에 이사회에서 승인ㆍ검토받고, 평소 승계군을 관리하며, 유사시 업무공백이 없도록 투명한 과정을 통해 차기 CEO를 결정하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승계 시스템을 언급했다. 지난달 진행된 KB금융의 차기 회장 선정 절차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시하면서다.

      그는 이날 공개석상에서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해외 금융회사들은 길게는 1년 짧으면 6개월 동안 평가 기준을 사전에 정하고 후보군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며 "KB금융이 상대적으로 잘하려고 노력한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그 정도면 괜찮은 것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원장은 "원래는 선임 절차에 대한 평가 기준과 방식을 정한 뒤 공론화를 통해 후보군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KB금융은 회장 후보군을 먼저 정하고 평가의 기준과 방식을 정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회장 선정 절차에서 KB금융은 이전 회장 선임 때보다 오히려 '투명성'과 '소통'면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주요 평가 항목과 항목별 세부기준을 공개하지 않았고, 적격후보자(숏리스트) 선정 배경 역시 발표하지 않았다. 2014년, 2017년 회장 선정 당시 대비 전반적으로 훨씬 더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번 회장 선임 절차에서 윤종규 현 회장은 '외압'은 물론, '내정'에 대해서도 크게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장 선임 절차 착수 3개월 전부터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사외이사들과 후계구도에 대한 대화는 물론, 개인적인 연락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문제는 실제 선정 절차가 투명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CEO 선정 기준을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회장 후보가 지명됐다. '후보군을 먼저 정하고, (이후에) 평가의 기준과 방식을 정했다'는 이복현 원장의 발언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결국 특정 후보에 유리한 판을 깔아둔 게 아니겠느냐'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비롯해 씨티그룹, AIG, 제이피모건체이스, 도이치뱅크 등은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잇따라 도입했다. 대부분 매년 경영승계 계획을 CEO나 이사회에서 수립하고, 검토하며, 감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되며, 잠재적인 후보자들도 그룹의 요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장과 주주들에게 공인받는 기간을 수 년간 거친다.

      KB금융의 이번 회장 선정 절차는 부회장ㆍ부문장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후보군을 육성하고, 후보군을 경쟁시켰다는 점에서 이전의 '지명식' 회장 선정과는 차별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회장의 자격과 기준이 뭔지, 어떤 평가 항목을 통해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투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투명성의 한 축이 무너지며 공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내 금융지주들이 CEO 승계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다.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비교해 상당히 늦었다는 평가다. 이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 새 규제 체제가 도입됐지만, 지명식 승계나 불투명한 절차 등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 상업은행 중 경쟁사와 비교에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JP모건의 경우 젊은 인사를 일찍 임원으로 발탁해 투명하게 후계 경쟁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시스템에 따라 다니엘 핀토 JP모건체이스 대표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제레미 바넘 JP모건체이스 CFO, 마리안 레이크 소비자 및 커뮤니티 뱅킹(CCB) 공동대표, 와 제니퍼 핍스자크 JP모건 CCB 공동대표 등이 후계자로 선발돼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2013년 전후 이른 시기에 임원으로 발탁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후계자들의 성과는 다이먼 회장을 포함, 1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매 분기 평가하고 판단한다. 순환보직 등 역량점검 절차가 체계화돼있으며, '즉시 대체가능 후보'와 '잠재 후보'를 구분해 상시 관리한다.

      그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한다. JP모건은 지난 4월 116페이지 규모의 연례 위임장을 통해 114명의 상위 임원 조직도를 공개하고, 이 중 제이미 다이먼 회장의 유사시 다니엘 핀토 대표가 단독 CEO 역할을 하게 된다고 적시했다.

      국민연금 등에 의결권행사 권고를 하고 있는 한국지배구조원은 "이사회 등이 CEO 추천 및 승계 업무를 회사와 주주,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실효성 있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종합적인 승계 규정을 마련하고 그에 따를 필요가 있다"며 "규정에는 CEO의 자격요건과 장단기 절차, 평가 기준, 관련 주체들의 권한과 책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하고, 해당 규정을 공개함으로써 시장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고, 승계 과정에서 나타날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10년 전인 2014년 이미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