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파격' 지원에도 PF 사업장 정상화는 '요원'
입력 2023.10.18 07:00
    정책 실효성에 의문 갖는 PF 시장 참여자들
    정부 지원에도 사업성 좋아질 매크로 환경 아냐
    유동성 공급 아닌 부실 처리가 먼저라는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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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각종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원책은 '무탈'하게 이뤄질 거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정부의 의지는 시중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을 압박해 자금을 모으는 형태로도 이어지고 있다. 부실 이연 정책이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정부의 억누르기가 훗날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PF대출 보증 확대와 자금 공급을 지속하고, 부실·부실 우려 사업장에도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 이달부터 본격 가동된다. 5대 금융지주·정책금융기관·건설공제조합 등 사실상 모든 시장 참여자가 뛰어들어 21조원 이상의 추가지원 여력을 확보한다.

      지원 결과에 관해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바람대로 PF 지원이 성공해 부동산 시장이 살아난다면 대다수가 웃을 수 있다. 브릿지론 사업장의 본PF 전환이 이뤄지고, 분양이 잘 이뤄지면 이번 정책은 부동산 침체기를 성공적으로 버티게 한 정책이 될 것이다.

    • 문제는 PF 시장 참여자는 정부 지원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시장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올해 상반기 133조1000억원으로 작년 말 130조3000억원 대비 2조8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연체율은 1.19%에서 2.17%로 증가했다. 증권사는 연체율이 10.38%에서 17.28%까지 뛰었다. 

      실제 부실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거란 관측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PF는 잔금 시점이 지나야 문제가 터진다. PF 대출 만기 연장이 이뤄질 경우 부실 가능성이 높더라도 연체·부실로 잡히지 않는다. 최근 새로운 사업장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으로 기존 사업장의 대출만 연장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정부 대책이 단순히 부실을 이연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업계에선 부실 사업장을 지원하더라도 과연 정상화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PF 만기를 연장하더라도 사업성이 좋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은 부실이 되레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시행사·시공사부터 은행·증권사·운용사 등 금융권까지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매크로 환경도 PF 시장에 불리하다. 역사상 가장 가팔랐던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고금리 여파는 직격타가 됐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2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중동 위기가 커졌지만, 여전히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멈추더라도 한국이 단기간 내에 기준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은 연초 이후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금리는 상승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8월 말 3.71%에서 10월 5일 기준으로 4.08%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10년물도 3.82%에서 4.32%까지 상승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책금리를 낮출 경우 정책금리가 시장금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국내 기준금리가 상승 혹은 유지될 상황에서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금융업계마저 당장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부실 사업장에 대출 만기를 연장하거나 대출 한도를 열고 있다. 

      공매 절차가 진행되는 사업장의 경우 선순위 대주와 중후순위 대주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부가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PF 대주단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지방사업장의 경우 실제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펀드 형태로 대주단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서울·경기 이외의 지역은 해당 펀드의 요구 수익률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사업장을 지원할지도 부동산 업계의 관심사다. 현재 정부가 계획한 지원 금액으로는 모든 건설사의 사업장을 지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올해 6월 말 기준 한국신용평가 신용등급을 보유한 건설사 중 PF 보증이 있는 15개사의 도급사업 PF 보증액은 19조1000억원이다. 이 중 위험 수준이 양호한 사업장을 제외하면 약 9조5000억원이다.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건설사를 포함할 경우 이 금액은 더 커진다.

      그동안 부동산 PF 시장의 경색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수십 건 이상 쏟아졌지만, PF 위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진작 무너졌어야 할 사업장을 살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라리 리스크가 터졌을 때 손실을 감내하고 부실 사업장을 빨리 정리했다면 지금의 금리와 시장 상황에 맞는 투자가 새롭게 이뤄질 수 있었을 거란 분석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연초부터 이어진 정부 정책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금리가 인하 추세로 돌아서는 상황을 전제로 깔고 있었지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사업환경이 이어지고 공사비용은 올라가면서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부실 PF를 처리하기보다는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부동산 경기 회복만을 기다리는 정책을 이어가는 이상, 부실을 이연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게 PF 사업장 지원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