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에 치인 증시, IPO 공모주로 쏠리는 유동성...다시 과열 징후도
입력 2023.10.19 07:00
    3분기 IPO 시장 공모 금액, 전 분기 대비 70% 증가
    大魚 두산로보 흥행에…중소형주 청약 증거금 5조 넘어
    외인 코스피 순매도 지속…이스라엘戰 증시 악재에도
    증권사 채권손 만회 욕구 및 따블 노린 해외기관에 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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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로보틱스ㆍ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올해 조(兆) 단위 대어들이 연이어 상장 채비에 나서면서 IPO(기업공개) 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고금리와 고유가, 고환율 등 '3고'(高) 압박에 국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갈 곳 없는 유동성이 공모주에 쏠린 까닭이다.  

      증권업계에선 금리 인상으로 인한 채권 평가손실을 IPO 및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로 보전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의 시세차익 실현 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하반기부터 증권사와 투자자 모두 공모주 시장 외엔 마땅한 수익 창출 대상이 없었다는 분위기다. 

      올해 하반기 공모 시장에선 서울보증보험,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예상 시가총액 3조원 이상의 대형주들이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IPO 절차를 밟고 있다. 이달 초 두산로보틱스가 기관 경쟁률 272대1 및 일반 청약 경쟁률 524대1, 청약 증거금 33조원에 달하는 흥행을 일으키자 대형주들도 잇따라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대신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IPO를 추진한 기업 수는 40곳, 공모금액은 8110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와 비교해서 기업 수는 17.6% 늘었고, 공모 규모는 70.4% 증가했다.

      유동성 지표인 투자자 예탁금(약 50조원)과 CMA 잔고(71조원)도 늘었다. 공모 시장 분위기를 보여주는 청약 증거금도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189조원을 달성했는데, ▲필에너지(15조원) ▲와이랩(6조) ▲에이엘티(7조원) ▲버넥트(5조원) 등 중소형주에도 최소 5조원 이상의 증거금이 모이면서 IPO 시장 훈풍을 증명했다.

      증시 악화에 따라 상장을 보류했던 SSG닷컴 등도 재상장을 추진하고, SK에코플랜트와 엔카닷컴 등도 조 단위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올해 연말까지 남은 IPO 상장 종목은 청구 종목과 스팩을 제외해도 25곳이나 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올해 초까진 중소형주가 IPO 시장을 견인해 상승세가 약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두산로보와 에코프로머티 등이 들어오면서 전체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공모 희망가도 밴드 상단을 초과하면서 공모가가 확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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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공모주의 인기는 이달 들어 불거진 '증시 위기설'과 맞물려 더욱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중국 경기 부진,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등 대외 경제가 약화되자 국내 증시도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를 연속 순매도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020년 3월(30거래일 연속 순매도) 이후 최장기간이다. 코스피는 이달 초 2500선도 붕괴됐으며, 지난 8월 이후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증시 불안감에도 공모주에 유동성이 쏠리는 이유는 증권사와 기관 투자자들의 수급이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3분기 실적 부진을 만회할 부서가 브로커리지와 IPO부문 외에 없고, 기관 투자자들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데다, 개인투자자들 역시 일단 공모가 대비 상승한 가격으로 시초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공모주를 일종의 '피난처'로 여기는 분위기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은 올해 3분기 실적이 시장 컨센서스(전망치)보다 못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자 부동산 및 기업금융(IB) 수수료 관련 수익이 2분기 대비 눈에 띄게 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미국 국채를 비롯한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증권사들이 자체 운용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채권 평가손이 커졌다. 증권사들은 총 약 200조원 가량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카드채나 여전채 등 변동폭이 큰 채권을 주로 담은 탓에 수익률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올해 3분기엔 채권과 상품을 운용하는 트레이딩(S&T) 부문 실적의 변수가 너무 크고, 부동산금융 시장도 회복이 덜 됐다"라며 "ECM부서가 갖춰진 대형 증권사들은 실적 만회를 위해 IPO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기관 투심도 공모주 시장에 쏠려 있다. 국내 공모주만큼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없다 보니,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아부다비투자청(ADIA) 등 해외 대형 기관들도 수요예측 참여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대형 증권사 IPO담당 임원은 "이른바 '따상' 제도 폐지 후에도 상장 첫날 2배 이상 주가가 뛰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해외 기관들도 나서서 10억원어치 물량이라도 받아가려고 한다"며 "ADIA의 경우 신성에스티, 필에너지 같은 중소형주 IPO에도 참여하는 등 IPO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