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위험 高보상 '최희문 모델' 한계왔나...금융당국 '타깃'된 메리츠證
입력 2023.10.18 15:52
    국감장서 미공개정보 유용ㆍ고액 성과급 등 이슈화
    금감원장 "추가 검사 필요성 있다" 촘촘히 뜯어볼 듯
    증권가선 2019년 CRO 교체 이후 '폭주'했다는 평가
    평판 이어 도덕성에도 타격...최희문 부회장 책임론
    • 그간 증권가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메리츠증권의 기업금융(IB) 영업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된 '이화그룹 내부정보 유용 논란'을 시점으로, 그간의 영업방식에 불법적인 내용이 없는지 금융당국이 촘촘히 들여다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슈가 '고위험 고보상'으로 대표되는 공격적 영업전략에서 비롯된 점을 고려하면, 메리츠식 확장 정책이 더이상 지속 불가능해지는 게 아니냐는 평가다. 메리츠증권의 '폭주'는 지난 2019년 최고리스크책임자(CRO) 교체부터 시작됐다는 시각이 적지 않은만큼, 결국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최희문 부회장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할거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핵심은 메리츠증권의 이화그룹 사모 메자닌(CBㆍBW) 투자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한 의혹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최희문 부회장은 이화그룹 계열사 지분 매각 관련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게 아니라며 근거를 제시했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강한 조사 혹은 수사의 단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정황인 건 틀림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이화그룹 계열사 외에도 최근 5년간 메리츠증권이 부실기업 자금조달 지원 목적으로 자금을 공급한 기업 중 18곳이 횡령ㆍ배임ㆍ부도ㆍ감사의견거절 등을 이유로 거래정지 됐다. 이들에 대한 자금 공급 규모만 7800억원에 달했는데, 메리츠증권은 이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국감에서 이슈가 된 이화그룹 3사 관련 거래에서도 메리츠증권은 보통주 전환ㆍ매각ㆍ대물변제 등을 통해 이익을 남겼다.

      메리츠증권은 공격적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투자와 기업 담보대출, 사모 메자닌 등으로 IB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 과정에서 거래를 발굴하고 추진한 임직원에게 최대 사업수익의 50%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보상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증권사의 소위 '선수'들이 메리츠증권으로 몰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번 국감에서는 이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임직원들이 인센티브로 돈 잔치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고,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잘못 설계된 성과 체계가 리스크 관리 부실과 부동산 집중 투자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메리츠증권에 대한 국감을 주도한 이용우 의원은 메리츠 증권에 대한 전면 종합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회사 내 정상적인 직업 윤리, 통제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안된 것 같다"며 "투자 프로세스에 회사가 어떻게 관련됐는지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앞서 메리츠증권은 8월 중순부터 지난달까지 약 한 달간 사모 메자닌 불공정영업 등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의 기획검사를 받았다. 이번 국감 이후 오히려 의혹이 더욱 커짐에 따라, 금융당국이 종합검사를 통해 거래 하나하나를 모두 뜯어볼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국감 이후 메리츠증권이 받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간 메리츠증권이 덩치를 키운 핵심 원동력은 '과감한 시장 개척'과 '파격적인 인센티브'였다. 이번 국감에서 두 가지 모두 '문제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전략을 지속할 수 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감을 지켜본 증권가는 대체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메리츠증권이 2019년 리스크관리본부의 힘을 뺀 뒤 '폭주'했고, 이런 지나친 성과주의가 회사의 평판은 물론, 임직원들의 윤리의식까지 마비시켰을 거란 해석이다.

      메리츠증권은 2019년 8년간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맡아오던 길기모 전무의 임기 만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부에서 운용사 출신 상무급 인사를 새 CRO로 들여왔다. 갑작스런 교체의 배경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메리츠증권의 영업 규모가 커지며 최희문 대표와 CRO의 의견이 배치되는 일이 잦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메리츠증권의 의사결정 구조는 CEO와 사업부서, 리스크부서 등 관계자들이 모여앉아 토론하고,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집행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 과정에서 확장을 추구하는 최 부회장과 안정에 무게를 둔 CRO 사이의 잠재적 갈등이 커지며 결국 인사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그 뒤 메리츠증권에는 '고금리 기업사냥꾼'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모 메자닌 시장에서도 CB 발행사들에게 '발행액 100%에 달하는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해당 담보채권은 국채 또는 AA급 이상 채권들로만 구성하라'고 요구했다는 등 불합리한 영업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롯데건설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면서 12%대 이율을 요구하고 선취수수료까지 챙겼는데, 이로 인해 기업들 사이에 평판이 상당부분 악화된 부분이 있다"며 "실제로 롯데그룹은 올 상반기 CEO 워크숍에서 메리츠증권이 아닌, 타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을 불러 시장 현황에 대한 발표를 청취하는 등 거리를 두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사모 CB 발행 과정에서 일부 임직원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차명계좌로 투자, 수십억원의 이득을 챙긴 정황까지 적발되며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해당 직원들이 소속돼있던 IB2본부의 박성철 전무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증권가에서는 내부통제 및 시스템의 문제인만큼 CEO인 최희문 부회장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다른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금융당국이 '과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인센티브까지 들여다 보겠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강력한 딜(deal) 선별능력과 후한 인센티브로 기능해오던 '최희문 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