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3000억' 까먹은 키움證...'주주 친화' 첫걸음부터 삐걱
입력 2023.10.23 10:43
    영풍제지 주가 조작 사태로 5000억 가까운 미수금 발생
    2500억원 비용 발생 추정...거래정지 해제 후 손실 확정
    2분기 CFD 600억...올해 '리스크 관리'로만 3000억 손실
    이달 초 '3년간 순익 30% 주주환원' 발표했는데 빛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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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풍제지 주가 조작 사태 여파로 키움증권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영풍제지 신용거래 관련 5000억원에 가까운 미수금이 사실상 회수 불능 상황에 처하며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상반기 차액결제계좌(CFD) 사태에 이어 리스크 관리 실패로 최소 3000억원이 넘는 수익이 허공에 날아가며, 올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예정이었던 '주주 친화 정책' 역시 유탄을 맞을 전망이다. 연간 순익 추정치가 30%가량 줄어들며 배당 재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까닭이다.

      23일 키움증권은 전 거래일 대비 19% 하락한 8만100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지난 20일 장 종료 후 코스피 상장사 영풍제지 관련 4943억원의 미수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까닭이다. 올해 들어 별다른 호재 없이 주가가 730% 급등한 영풍제지는 지난 18일 하한가 이후 거래가 정지됐다. 검찰은 이날 영풍제지 주가 조작 혐의로 일당 4명을 구속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키움증권은 최소 수천억원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는 평가다. 영풍제지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규정 제12조에 의해 '거래상황의 급변'을 이유로 거래가 정지됐으며, 거래 재개 시기는 현 시점에선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키움증권은 미수 계좌의 영풍제지 주식을 매각해 미수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당장 매각할 길이 막힌 셈이다.

      영풍제지 주식이 단기간 급등한데다 현 시가총액의 3분에 1에 해당하는 규모의 반대매매가 예정돼있는만큼, 거래가 재개되더라도 주가 추가 급락은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영풍제지 주가는 지난 9월초 장중 한때 5만4200원까지 올랐고, 거래 정지 전 주가는 3만3900원이었다. 영풍제지 주가 이상 급등 전인 올해 초 주가는 주당 6000원대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 추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상 급등 주식에 연관된만큼 미수금의 10%라도 회수하면 다행일 것"이라며 "미수가 발생한 개인 주주들은 주가조작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만큼, 공격적으로 회수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KB증권은 23일 레포트를 통해 4분기 실적으로 일단 2500억원의 비용을 반영했다. 이에 따라 올해 6900억원으로 전망했던 연간 당기순이익 규모를 5290억원으로 23.3% 하향하고, 목표 주가 역시 하향 조정했다. 

      KB증권은 "영풍제지는 미수 거래 비정상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고, 키움증권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며 "반대매매 종료 이후 1차 예상 손실금액이 집계될 것이고, 이후 고객 변제 규모에 따라 최종 손실금액이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키움증권의 안일한 리스크관리가 초래했다는 게 증권가의 전반적인 지적이다. 미래에셋증권 등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는 5~7월 사이 주가 이상 급등하던 시기 영풍제지 증거금률을 100%로 조정했다. 아예 미수 거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키움증권은 거래정지 직전까지 증거금률 40%를 유지했다. 100만원어치 주식을 매수할 때 40만원만 증거금으로 내면 됐다는 이야기다.

      키움증권은 23일 아침 뒤늦게 에코프로ㆍ레인보우로보틱스ㆍ포스코홀딩스ㆍ한미반도체 등 15개 종목을 증거금률 100% 종목으로 변경 조치했다. 변경 사유는 '미결제 위험 증가'였다. 개인투자자 매매 비중 및 미수 거래 비중이 높고 가격 변동이 심한 종목 위주로 증거금률을 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키움증권은 지난 2분기 CFD 사태로 인해 약 6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이번 영풍제지 사태 역시 4분기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KB증권의 추정을 적용해도 올해에만 리스크 관리 실패로 최소 3000억원의 손실을 떠안은 것이다. 만약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주주들이 '안일한 증거금률 규정 운영으로 피해 규모를 키웠다'며 키움증권에 책임을 묻는다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위탁증거금률 규정은 지난 2004년 도입 이후 증권사별 자율로 운영해왔다. 삼성전자 등 재무가 탄탄한 대기업의 경우 보통 30%, 일반 상장사 종목의 경우 40%를 적용하며, 해당 증권사의 정책ㆍ마케팅 전략에 따라 조정한다. 지난 2007년 코스닥 상장사 루보 주가조작 사태 때엔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증거금률을 40%에서 100%로 조정한 삼성증권ㆍ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 등이 금융당국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키움증권의 주주환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키움증권은 CFD 사태 및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등의 연루 의혹으로 상반기 주가가 급락했던 바 있다. 이후 분위기 반전을 위해 주주환원을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이달 초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 및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환원할 것'이라는 정책을 내놨다.

      이번 사태 전 키움증권의 올해 연간 당기순이익 컨센서스(예상 전망치 평균)은 7340억원이었다. 이 경우 주주환원 규모는 2200억여원이 된다. 자사주 소각 없이 배당만으로 가정했을때 주당 평균 배당 예상액은 약 8400원으로, 급락 전 주가(10만300원) 대비 배당수익률은 8.4%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KB증권의 연간 순이익 전망치 적용시 주주환원 규모는 1580억여원으로 줄어들고, 예상 배당액 역시 6000원, 시가 배당수익률은 6.0% 수준이 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이 키움증권을 선호하는 배경 중 하나는 미수거래 가능 종목이 많고 증거금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수거래 및 증거금률 관련 정책을 보수적으로 갖춘다면 그만큼 본업 경쟁력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경영진의 고민거리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