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증, IPO 철회 결정…국내외 기관 투심 '냉랭'
입력 2023.10.23 14:23
    23일 공자위 회의 끝에 IPO 철회 신고서 공시
    하단 이하 주문 위주…그마저도 물량 못 채워
    GIC 등 해외 기관 미참여…국내 투심도 '냉랭'
    우리은행 사례 택할까…내년 재상장 공모가 관건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조(兆) 단위의 대어로 주목받았던 서울보증보험(이하 서울보증)이 결국 코스피 상장을 철회하기로 했다.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희망 공모가 하단(3만9500원)마저 지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상장 철회로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 회수 작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오는 2027년 말까지 공적자금 10조원을 전액 회수해야 하는 예보가 끝까지 현 공모가를 고집할 경우, 내년에도 IPO가 결렬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결국 우리은행처럼 ‘과점주주’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이하 공자위)는 이날 오전 서울보증 및 예금보험공사 경영진들이 참여한 제208차 회의를 개최하고, 서울보증 상장 임시 철회를 결정했다. 

      해당 내용은 이날 오후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측에 전달됐다. 이를 통해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도 공모금액의 0.45%에 해당하는 6억2000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챙기지 못하게 됐다. 

      정부 관계자들이 상장을 철회한 이유는 지난 13~19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필요한 모집 금액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내 기관이 공모가 밴드(3만9500원~5만1800원) 하단 이하에 주문을 넣었으며, 그마저도 마지막날 1100억원 수준밖에 모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서울보증이 기관 수요예측으로 모집하려 했던 금액은 하이일드 펀드 배정 물량을 포함해 약1516억~2068억원 사이다. 공모가 하단 기준으로도 약 70% 수준의 금액만 모집된 셈이다. 

      이번 수요예측 부진에는 기관투자자들의 오버행(잠재적 과잉 물량 주식) 우려가 주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후 대거 물량 출회로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적 감소로 연간 배당액마저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

      특히 서울보증이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열고 적극 홍보했던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해외 기관투자자들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외국계 ‘큰손’들이 오버행을 우려하며 빠지면서, 대부분의 국내 기관들도 참여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수요예측 당시 코스피가 약세장이었던 상황에서, 해외 기관들마저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하단(3만9500원)에 쓰겠다는 국내 기관들도 싹 사라졌다”며 “주관사들도 지난 20일 결과를 받아보고 IPO 철회를 직감했던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공모주펀드 운용역도 “보험업의 성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구주 매출 비중이 100%에 달하는 딜이라 처음부터 보수적으로 바라봤다”며 “하단보다 낮은 가격에 신청할까 고민했는데, 딜이 깨질 것 같아서 그냥 우리도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예보는 이번 공모로 조달한 금액 전액을 공적자금 상환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상장 후 의무보호예수 기간 6개월이 지난 뒤, 2~3년간 최대 지분 33.85%를 추가 매각하고 오는 2027년까지 총 5조원의 미회수 자금을 거두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상장 철회로 기존 계획안 역시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 일정을 따르려면 내년에는 상장을 마쳐야 하는데, 현재의 공모가가 유지될 경우 기관들의 투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장이 나쁘기도 하지만, 수요예측이 하단에 모인 수준이 아니라 북(book) 자체가 차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현 밸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서울보증보다 배당 성향과 멀티플(배수)이 양호한 코스피 기업들이 많은데, 굳이 락업(보호예수) 때문에 시세 차익 기대감이 옅은 서울보증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10조원의 국세를 투입한 서울보증의 공모가를 낮출 경우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에 증권업계에선 서울보증이 우리은행 사례처럼 ‘과점주주 체제’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국내 기관 관계자는 “시장에선 자금회수가 급한 예보가 내년 초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위기”라며 “내년엔 과연 공모가 밸류에이션을 낮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