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내년 HBM 생산역량 2.5배로 확대…업계 '최대' 공급사 등극 목표
입력 2023.10.31 15:18
    D램은 1a·1b나노 전환, 파운드리선 2.5D 패키징 집중
    AI 반도체 공급 병목인 HBM·후공정에 선제 투자 전략
    업계 최고 재무여력 기반 SK하이닉스·TSMC 추월 포석
    '수주형' 사업인 만큼 엔비디아 공급 점유율 지켜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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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내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을 기존 2.5배로 늘려 업계 최대 공급사 지위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가파르게 치솟으며 HBM 생산과 후공정 패키징 설비 병목이 발생한 틈을 타 재무여력과 안정적 양산 능력을 기반으로 경쟁사를 추월하겠단 전략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향(向) 공급 점유율을 둔 경쟁도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31일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회를 열고 3분기 연결기준 매출 67조4047억원, 영업이익 2조433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모바일경험(MX) 부문 호조와 디스플레이(SDC) 부문의 예상 밖 호실적으로 올해 처음 분기 조 단위 실적을 냈다. 반도체(DS) 부문 적자는 약 3조75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6000억원가량 줄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4분기에도 고객사 재고 정상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내년 범용 서버 수요까지 정상화하면 업황 회복 속도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전자 역시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낸드 감산을 이어가되 D램은 1b나노 전환, 낸드는 V7, V8 등 선단공정 고부가 제품 생산 등으로 수익성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HBM 전략에선 경쟁사 대비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증설 계획을 내놨다. 내년까지 업계 최대 공급 역량을 갖춘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HBM 생산능력(CAPA)을 올해 2.5배 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이미 내년 물량을 두고 고객사와 공급 협의 중"이라며 "3분기 HBM3 양산 제품 공급을 시작했고, 4분기 고객사를 늘려 판매를 본격화해 내년 상반기엔 전체 판매 물량의 과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고객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엔비디아 내 공급 점유율을 둔 경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 들어 범용 서버 핵심 고객사인 빅 테크의 투자가 생성형 AI 대응을 위한 가속기(GPU) 서버로 쏠리며 HBM 역량이 D램 경쟁의 최대 승부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지난 3분기까지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하며 D램 경쟁에서 삼성전자를 바짝 쫓는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도 2.5D 패키징과 같은 첨단 후공정 공급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재 GPU 서버용 반도체 품귀 배경에 HBM과 후공정 패키징 병목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시장을 독식 중인 엔비디아는 현재 대만 TSMC 선단공정으로 GPU를 생산한 뒤 SK하이닉스 HBM과 패키징할 때도 TSMC 후공정에 기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이나 TSMC의 후공정 역량이 부족하면 공급이 부족해지는 구도다.

      삼성전자가 가진 풍부한 재무여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3분기 말 삼성전자 보유 순현금은 약 83조500억원으로 지난 1년 동안 약 33조3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이례적인 DS 부문 적자가 장기화하는 가운데도 경쟁사와 달리 투자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을 모두 영위하는 만큼 HBM과 첨단 패키징 후공정에 선제 투자해 고객사 확보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많다.

      다만 HBM 시장이 기존 메모리 반도체 사업보단 파운드리와 같은 수주형 산업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 같은 선제 투자 전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AI 서버에 탑재되는 GPU 가격이 워낙 비싼 터라 이미 검증이 끝난 기존 HBM, 후공정 공급사가 협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최근 투자자 설명회(IR)에서 내년 이후에도 고객사 내 공급 점유율이 경쟁사를 훌쩍 넘어설 거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과거 TSMC도 경쟁사 대비 선제적인 증설 전략을 펼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애플과의 통합반도체(SoC) 협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됐던 상황"이라며 "어차피 D램 선단공정에서 HBM을 생산하는 데다 DDR5 교체 수요가 지속될 예정이라 기대만큼 수주가 이어지지 않았을 때 리스크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엔비디아 내 공급 점유율을 둔 경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