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화물 매각 벽 넘은 대한항공…LCC 인수 체력·미국 심사 변수로
입력 2023.11.02 16:11|수정 2023.11.02 17:37
    이사간 이견 팽팽…천신만고 끝에 이사회 통과
    LCC 인수 체력 의문…EC 최종 승인까지 안갯속
    EC 결정 관망하던 美 DOJ도 깐깐하게 심사할 듯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 매각을 결정하며 3년간 지연되고 있는 국적 항공사 통합 작업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이했다. 이사회 통과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은 저가항공사(LCC) 중 한 곳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LCC를 대한항공의 의미있는 경쟁자로 판단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기업결합 승인 장벽도 넘어야 한다. 미국 법무부(DOJ)는 지금까지 EC의 판단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국적 항공사 통합에 대한 시각은 썩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부정적 기류가 확산하거나 소송 절차가 시작되기라도 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작업은 다시 난기류에 휩싸일 것으로 보이다.

      2일 아시아나항공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EU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에 대한 동의 여부' 안건을 심의해 가결했다. 이사회 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결국 화물사업 매각으로 결론이 났다.

      이사회에는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4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표결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강 이사는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이해충돌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배임 우려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회사가 독자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국정 감사에서 '화물사업 매각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이사회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이후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승인 직후 시정조치안을 제출 완료하고 내년 1월 말 심사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화물사업부문 매각과 관련해 고용 승계와 유지 조건을 유지하는 등 구성원들과 원활한 합의 진행을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사업 매각은 EC가 지적한 화물사업 경쟁 제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다만 앞으로 매각 전망은 낙관하기 어렵다. 이제 겨우 이사회의 문턱을 넘었을 뿐 매각 성사 여부나 EC의 판단 등 변수가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EC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인수자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대한항공은 에어인천, 에어프레미아 등 LCC를 인수 후보로 보고 있는데, 이들이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자금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객 라인이 없는 화물사업은 시너지 효과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측이 화물 사업부 매각을 성사시켜도, EC 측에서 ‘유의미한 경쟁자’로 인정해 줄 지는 미지수다. 경쟁제한을 우려하는 EC 입장에서는 화물 사업부 인수자가 대한항공을 견제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줘야 하는데, 현재 거론되는 LCC들은 향후 사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아시아나항공에 앞선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이 제풀에 지쳐 떨어지면 대한항공만 과실을 취하는 형국이 되고, 이는 EC의 이해관계에도 반한다.

    • 아시아나 화물 매각 벽 넘은 대한항공…LCC 인수 체력·미국 심사 변수로 이미지 크게보기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화물사업부를 매각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아시아나항공 내부 관계자는 “기업결합 자체에 대해서는 노조 별로 의견이 갈리지만 화물사업 분리 매각은 경쟁력 저하, 직원 분산 등 이유로 공히 반대하고 있다"며 "기업결합을 위해 화물사업을 쪼개 파느니 차라리 제3자에 통째로 매각하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통해 EC의 승인을 얻더라도, 일본과 미국 경쟁당국의 승인 문제가 남는다. 대한항공은 해외 경쟁 당국의 합병 승인을 따내기 위해 슬롯과 운수권을 넘기는 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미국과 일본의 승인을 위해 추가로 노선을 경쟁사에 내주면 사실상 ‘항공업 시너지’라는 명분은 더욱 희석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은행은 EC가 판단을 내리면 미국도 동일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 보고 있다. 다만 미국 DOJ는 애초 EC보다 더 국적 항공사 통합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EC 측이 강경하게 나서는 상황이라 굳이 나서지 않았을 뿐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근 한미 양국이 정치적으로 협조하는 부분들도 많다 보니 앞장 서서 반대하기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미국 법무부가 소송 카드를 꺼내 드느냐도 변수다. 최근 '반독점 기조'를 강화하면서 기업결합 심사를 거치기 보다 바로 소송 절차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EC가 '다른 회사 자산 매각'이라는 새로운 심사 방식을 꺼내 들었지만 미국은 바로 소송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소송 절차가 시작되면 적어도 수 년간 시간이 끌릴 수밖에 없다. 미국 법무부가 이끄는 소송이 너무 많다 보니 소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결론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석훈 회장도 국정감사에서 미국 법무부가 기업결합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최장 몇 년이 걸리며,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다시 전면적으로 재검토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C에서 화물사업부 원매자들의 기초 체력이나 영업 노하우 등 적격성을 꼼꼼히 심사할텐데 현재 국내 LCC들은 부족하다고 보는 기조가 강하다”며 “대한항공이 결국 시간끌기를 하는 셈인데, 미국은 EC처럼 시정조치안을 제안하고 협의하는 과정 없이 바로 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기 떄문에 또 다른 난관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