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부동산팀 쓸 곳이 없다"…부동산 장기 불황에 골머리 앓는 회계법인
입력 2023.11.03 07:00
    부동산 불황 이어지며 회계법인도 개점휴업
    외부인사 영입 덕 봤지만 이제는 천덕꾸러기
    회계사 자격 없다 보니 다른 업무도 못 맡겨
    입지 약했던 곳에선 "지금이 조직개편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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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회계법인들도 고난의 시기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보강했던 전문 인력들은 거래 절벽에 일손을 놓고 있는데, 상당수가 회계사 자격증이 없다 보니 감사나 실사 등 다른 업무로 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며 자본시장의 경색은 풀리지 않고 있다. 캡레이트(수익률)보다 금리가 높다 보니 부동산 매수세는 없고, 기존 투자자들은 만기를 연장하며 시간을 끄는 데 급급하다. 부동산으로 앉아서 돈을 벌던 금융사는 물론 운용사와 자문사들도 일감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부동산 호황기 전문 인력을 외부에서 많이 끌어 왔다. 부동산 거래는 M&A와 유사하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돼 있어 회계사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동산 담당 파트너들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수천억원 짜리 거래를 주선하면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챙기니 1년에 한 건만 해도 실적 고민이 없었다.

      회계법인들은 부동산에 힘을 쏟으며 비감사부문 강화와 매출 증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듯했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식으며 분위기가 반전했다. 부동산 거래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해 애써 갖춘 부동산 담당 조직이 개점휴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력 중 상당수가 ‘부동산 특화’거나 ‘비회계사’다 보니 활용도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대형 회계법인 중 딜로이트안진이 부동산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이후 사세가 기울고 인력 이탈이 이어졌다. 삼일PwC, 삼정KPMG, EY한영 등 다른 빅4 법인과 대등하게 겨루기 어려워지니 부동산 등 비경쟁 부문에 힘을 쏟았다. 2018년엔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토마스 컨설턴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공을 들인만큼 호황기에 특수를 누렸지만 이제는 고민도 가장 깊어진 모습이다. 안팎에서 조직 축소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딜로이트안진 파트너는 “그나마 부동산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문할 거래가 없다”며 “50명 수준의 부동산 인력 대부분 회계사 자격이 없다 보니 다른 업무를 시키기도 어려워 그냥 놀리고 있다”고 말했다.

      삼정KPMG는 지난달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최연소 재무자문부문 대표를 앉혔고, 기존 7본부를 10본부 체제로 확대했다. 10본부에서 부동산 전 분야에 대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에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부동산 담당자들을 한 곳으로 결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기 때에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삼정KPMG 파트너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동산 인력들을 모으고 나니 내부에서도 이렇게 담당 인력이 많았었냐는 반응이 나왔다”며 “프로젝트 발굴이나 아이디어 공유 차원에선 유리할 수 있지만 본부 차원의 책임만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삼일PwC는 상대적으로 부동산 자문 영역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경쟁 법인들이 외부에서 자문 인력을 데려올 때, 내부 회계사를 활용하는 전략을 폈기 때문이다. 간혹 한 건의 거래로 수십억원의 자문료를 거둬들인 파트너가 주목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수수료가 박한 실사 업무에 주력했다.

      삼일PwC 내부적으로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무리해서 외부 인력을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고민이 크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는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것이고 그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삼일PwC 파트너는 “내년까지도 부동산 거래가 거의 없을 거라는 데 우리 입장에서는 호재가 될 수 있다”며 “회계사만으로는 부동산 일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려울 때 미리 외부 인력을 영입하고 조직을 리빌딩해야 한다”고 말했다.

      EY한영도 부동산 자문 영역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형 빌딩은 물론 한동안 회계법인 부동산 부문의 핵심 일거리였던 골프장 거래에서도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만큼 불황의 충격파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재도 한 손에 꼽을 파트너들만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