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총선' 만드는 정치권에 침묵하는 당국…CFD 사태 교훈 어디로?
입력 2023.11.06 07:00
    취재노트
    외국계IB들의 불법 공매도 관행 밝혀지자
    정치권 '공매도 한시중단' 카드로 총선 준비?
    당국, CFD 사태가 남긴 교훈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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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공매도가 없는 시장은 정상적인 자본시장이 아니다. 금융위 역시 이를 알고 있지만 말하지 못할 뿐이다." -당국 고위 관계자

      BNP파리바와 HSBC 등 홍콩 소재의 글로벌IB(투자은행)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카카오 등 수백여 개 종목을 불법 공매도하던 관행이 최근 금융당국에 의해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은 즉각 거래 상위권 글로벌IB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이를 위해 20명의 인원을 갖춘 특별조사단까지 신설한 상황이다. 

      당국의 불법 공매도 손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금융위가 지난 정무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불법을 공매도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권성동, 윤창현 등 여당 소속 중진 의원들도 지난달부터 갑자기 ‘공매도 한시 금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대통령실도 금융위에 공매도 제도 개선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먼저 대통령실에 필요성을 설득했고, 이를 대통령이 받아든 것이다. 

      포스코홀딩스ㆍ에코프로비엠ㆍ에코프로 등 2차전지 3개 종목의 소액주주는 작년 말 총 64만명 수준에서 올해 중반 12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를 봤을 때, 정부여당의 태도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2차전지 종목에서 공매도가 유독 거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공매도에 대한 반감이 큰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노리고, 일종의 ‘총선운동’에 나선 셈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코스피에서 공매도 잔고가 가장 높았던 종목은 포스코퓨처엠(7151억원)이었고, 그 뒤를 포스코홀딩스(6839억원)가 이었다. 특히 코스닥에서는 에코프로(1조750억원), 에코프로비엠(1조482억원), 엘앤에프(3366억원) 등 공매도 상위권이 모두 2차전지 종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차전지 주가 폭락과 맞물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달 공매도 정책 과실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며 금융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현재 국내 공매도 제도는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정보력과 자금력, 매매 기술력 등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개인투자자 재산을 탈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공매도가 공정한 장이 아닌, 외국인 투자자들의 약탈적 공매도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주가 폭락이 기관투자자들의 공매도 때문이라고 생각한 개인투자자들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달려갔다. 현행 무기한 차입 공매도 방식을 개선해달라고 건의하는 내용의 청원은 현재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무위까지 회부된 상황이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투자자들의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 최소 3개월, 최대 6개월간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거래를 아예 차단하고, 이 기간 동안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실행하자는 주장도 여당에서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공매도 한시 중단을 주장한 이후, 1년4개월여만에 또 같은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목소리 큰 강성 개미(개인투자자)들로부터 표를 얻겠다는 구상”이라며 “강서구 보궐선거 이후 경각심을 느낀 여야가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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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여의도 정가에서는 어느새 ‘2차전지 총선운동’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이를 지켜보는 금융권 사람들과 금융당국 고위 인사들은 답답함을 금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선진시장처럼 궁극적으로는 공매도 자체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논지로 발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다. 

      올해 4월 8개 종목의 주가가 폭락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한 ‘CFD(차액결제거래) 사태’ 직후, 금융권에서는 ‘공매도를 막은 풍선효과’라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14개 종목 대부분은 공매도가 불가능한 종목이었다. 당시 공매도가 폭넓게 허용됐다면 투자자들끼리 알아서 적정 가격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이를 막다보니 시세조종 세력들이 개입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수면 위로 나왔지만 주를 이루진 못했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입을 열지 못했다는 표현이 가까울 것이다. 공매도 전면 허용을 주장할 경우, 이를 공격하는 개인들의 비난도 무서웠지만 국민 여론을 의식했던 정부를 무시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만큼 공매도라는 안건은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인 사안이 됐다.

      당국의 CFD 조사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공매도가 없는 시장은 자본시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CFD 사태 역시 공매도가 왜 필요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면서도 “민감한 이슈라서 현직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입단속”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공매도 규제 효과에 대해 “공매도 금지는 가격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변동성을 확대시키며 시장거래를 위축시킨다”며 “공매도의 기능을 부인하기는 어려우며, 전면 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접근방식보다는 그 기능은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국내외 금융사 CEO들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자리에서 어떠한 말들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본시장을 이끄는 수장들이라면, 투자자들의 표만 생각하는 정치권에 마냥 순응하지 않을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