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효과 드러나는 메모리 업황…삼성전자 '보수적' 투자 바라는 시장
입력 2023.11.06 07:00
    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동참 덕 시장재고 해소 추세
    반년 걸린 입장 선회…적자에 AI發 수요 변화 겹친 덕
    SK하이닉스, 내년 HBM 대응 우선순위로 목표 설정
    삼성전자 '보수적' 투자·전망 이어가길 바라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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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까지 감산에 동참한 덕에 공급사들이 줄지어 시장 재고가 줄어든다는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낸드는 물론 비교적 상황이 좋은 D램도 내년 투자는 수요가 확실하고, 수익성이 좋은 제품 판매를 확대하는 데에만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굳어진다. 업계는 곧 실적 발표회를 앞둔 삼성전자도 이 같은 보수적 투자 계획을 내놓길 바라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업황에 대한 시장 우려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쳤다. 공급과잉 가능성은 낮고, 인위적 감산은 없으며, 투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과거와 달리 서버 등 수요처가 다변화한 만큼 수익성 중심 대응이 가능하단 설명이었는데, 이 같은 입장은 올 들어 자연적 감산, 인위적 감산 순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을 결정한 것이 1998년 이후 25년 만이라는 해석이 뒤따랐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처음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웨이퍼 투입량을 낮춰 가동률을 조정하는 방식의 인위적 감산은 불황기 후발 업체의 고육책으로 통한다. 매년 수십조원을 투자하는 산업인 만큼 고정비 부담이 높아 가동률을 낮췄을 때 수익성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시장을 평정한 뒤, 1위 삼성전자는 단 한 번도 인위적 감산에 나선 적이 없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결국 인위적 감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정상 수준을 한참 넘긴 시장 재고와 반도체 부문 적자 부담 등을 꼽는다. 삼성전자보다 시장 점유율이나 원가 경쟁력이 낮은 경쟁사들은 일찌감치 올해 투자를 줄이고 감산에 돌입했지만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삼성전자도 분기마다 반도체 부문 조 단위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연간 적자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개화가 서버 시장 수요를 이렇게 꼬아놓을 줄 예상하지 못한 탓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를 내놓은 뒤 빅 테크들은 기존 서버에 투입할 돈을 AI 서버 구축으로 돌려버렸다.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나 삼성전자의 D램은 죽을 쑤고 엔비디아 가속기(GPU)와 SK하이닉스 HBM만 잘 팔리는 시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26일 SK하이닉스 실적 발표회에선 이 같은 시장 환경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D램 출하량은 20% 이상, 평균판매단가(ASP)는 10% 이상 끌어올리며 '나 홀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 D램 수익성이 경쟁사 대비 15~30% 가까이 좋은 결과로 보고 있다. 이례적인 걸 넘어 처음 있는 일로 풀이된다.

      마이크론에 이어서 응용처 전반 고객사 재고가 줄어들고 있다는 희소식도 전했는데, 유일하게 재고가 소폭 늘어난 곳으론 서버 시장을 지목했다. 서버 고객사들이 AI 투자에 열을 올리면서 범용 CPU나 D램에 일종의 구축효과를 낳았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엔비디아와의 HBM 협력 덕에 자사 D램 사업이 경쟁사를 앞서고 있다는 점을 내비친 셈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투자(CAPEX)는 올해보다 늘겠지만 증가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보수적 기조를 이어가겠다 밝혔다. 수요가 확실한 HBM과 DDR5에 집중하기 위해 1a나노 전공정과 실리콘관통전극(TSV) 후공정 등 기술개발, 공정 전환 중심으로 투자하되 양산 확대는 없다는 얘기로 투자가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내년 투자 계획이나 생산 계획도 마찬가지로 보수적이길 바라는 분위기가 짙다. 삼성전자 역시 낸드 인위적 감산을 지속하면서 기술개발과 공정 전환에 집중해 공급 증가를 제한하길 바란다는 얘기다. 올해 삼성전자는 작년보다 10% 안팎 투자비를 줄였는데, 장비 주문을 늦췄을 뿐 신규 팹 부지 등 인프라 투자는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감산 동참 효과가 이제 막 드러나고 있는데 낸드 수요의 완전한 회복 시점은 아직 불투명하고, 현재 경기 둔화에 따른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라며 "삼성전자가 IR에서 다음 해 투자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최대한 보수적인 입장이 나오길 바라는 기대가 크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