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도 아닌데 공매도 전면 금지...'12ㆍ12 조치' 떠올리는 시장
입력 2023.11.06 10:25
    Invest Column
    금융시스템 위기도 아닌데...'이전과는 다른 배경'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힘 쏟더니 180도 태도 바꿔
    가격 효율성 약화ㆍ거래 위축ㆍ변동성 부작용 우려
    "명분 없는 정부의 시장 개입...모두가 패배자될 것"
    • "코스피 지수 2400 회복은 금방 됐지만, 3000 회복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금융위원회가 지난 5일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내년 6월까지 코스피ㆍ코스닥 전 종목 신규 공매도 계약을 막기로 한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로존 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 이어 국내 증시 역사상 네 번째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는 이전 세 번의 경우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 증권가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전엔 국내 이슈만이 아닌,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으로 인해 공매도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당시엔 미국 등 선진국도 한시적으로 같은 조치를 취했다. 

      지금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시스템 붕괴'를 걱정할만한 수준의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춘다'는 건 다분히 국내적인 이유로 해석된다. 6개월 뒤의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했다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미 증시의 분위기는 지난 3일부터 돌아서고 있었다. 미국의 제조업 구매자지수(PMI)가 예상 외로 부진해 경기 위축이 기정사실화했고, 고금리 정책을 뒷받침해주던 고용마저 식어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미국 선물 시장이 반영하고 있는 12월, 내년 1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은 한 자릿 수로 뚝 떨어졌다. 긴축 완화의 신호가 뚜렷해지며 달러는 약해졌고, 시중금리는 내렸고, 코스피를 비롯해 각국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6일 코스피는 장 초반 2% 이상 급등하며 보름만에 2400선 위로 올라섰다. '오를 자리에서 올랐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숏 커버링(공매도 계약을 해지하기 위한 매수세)이 들어오며 오버슈팅(과열 상승)한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공매도 금지 조치는 증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코스피 상승률은 오히려 마이너스(-) 1.70%를 기록했다. 2011년 유로존 위기땐 5.6% 올랐다. 코로나19 위기 당시엔 공매도 금지 기간동안 지수가 40% 넘게 올랐지만, 이는 공매도 금지 조치의 효과라기보단 양적완화에 따른 자산 가치 폭등으로 보는 게 옳다는 평가다.

      문제는 다분히 반(反) 시장적인 이번 조치가 불러올 후폭풍이다.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이차전지주들은 6일 일제히 주가가 10% 이상 오르는 등 수혜를 입고 있지만, 애초에 이차전지주의 폭락이 이전의 비합리적인 급등 때문이었음을 고려하면 향후 재하락의 불씨는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모건스탠리(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은 물 건너 갔다는 평가다. 당장 지난 6월만 해도 MSCI는 '제한적 공매도' 등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인한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유로 한국 증시를 선진국 지수 후보로 편입하지 않았다. 지난 4월만 해도 정부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목표로 공매도 전면 재개와 외환거래 시간 연장 등을 검토했지만, 반 년만에 180도 자세가 바뀐 것이다.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이 약화하며 비합리적 폭등과 폭락이 반복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8월 코로나19 위기 당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장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가격 효율성은 일관되게 저하됐고 ▲변동성과 극단 수익률의 발생빈도가 늘어나며 ▲시장 거래는 위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마치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공매도 전면 금지는 증시에 참여하는 모든 투자자를 패배자로 만드는 극약 처방"이라며 "명분 없는 정부의 개입이 시장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12ㆍ12 조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989년 12월 12일 '증권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1989년 4월 1000선을 넘었던 코스피 지수가 반 년만에 20% 가까이 하락하며 시장에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던 시기였다. 대책의 골자는 ▲투신사가 무제한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게 하고 ▲주식매입자금을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지원하며 ▲고객 예탁금 이용율과 기관투자가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당시 '3대 투신'이었던 한국투자신탁ㆍ대한투자신탁ㆍ국민투자신탁은 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정책 발표 이후 보름간 2조8000억원을 증시에 쏟아부었다. 투신사의 끝없는 매수세에 힘입어 700개가 넘는 종목이 정책 발표 후 이틀간 상한가를 쳤고, 코스피 지수는 금새 900선을 회복했다.

      인위적인 부양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스피 지수는 이듬해인 1990년 6월 다시 600선으로 주저앉았고, 1992년엔 450선까지 밀렸다. 자기자본의 6배가 넘는 자금을 쏟아부은 3대 투신은 연간 당기순손실이 4000억원 넘어설 정도로 불어나며 부실화됐고, 결국 통폐합 및 매각되며 '투신의 시대'가 저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