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이어 시장조성자까지...지속되는 '증시 퇴행' 우려
입력 2023.11.08 19:37
    Invest Column
    공매도 전면 금지 이후엔 '시장조성자' 타깃 우려
    거래소 '공매도 자제하라' 공문...거래 기능 스스로 차단
    증시 시장조성자는 이미 무력화...공매도 실적 '제로'
    주가에 도움되는 선진 제도인데...증권가 '무력감' 호소
    • 공매도 이어 시장조성자까지...지속되는 '증시 퇴행' 우려 이미지 크게보기

      "공매도 전면 금지에 이어 시장조성자 제도까지 손 댄다면, 다시는 '선진국 증시'의 문턱도 갈 수 없게 될 겁니다." (한 증권사 IB 담당 임원)

      역사는 반복된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다음엔 시장조성자가 타깃이 될 거란 소문이 증권가에 흉흉하게 떠돌고 있다. 이미 일부 투자자 단체는 '시장조성자 제도 폐기'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도 코스닥 공매도 오히려 늘었다'며 현실을 호도하는 헤드라인이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6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맞춰 증권사 파생상품 시장조성자들에게 '이번주는 시장 조성 의무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사실상 공매도를 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실제로 6일 파생상품시장 시장조성자 공매도는 '제로'였다.

      시장조성자의 업무는 거래 양방향으로 호가를 제출해 매도 호가와 매수 호가의 간극을 줄이고, 거래체결 가능성을 높이며,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맺으면 시장조성자(MM;Market Maker), 상장사 혹은 상장지수펀드(ETF)와 계약을 맺으면 유동성 공급자(LP;Liquidity Provider)라고 부른다.

      양방향 호가를 제출하며 유동성을 공급해야하는 시장조성자는 업무 특성상 '위험 중립' 포지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 방향으로만 호가를 쌓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시장의 방향성에 베팅할 순 없다. 간단히 요약하면 매도자를 위한 유동성 공급은 매수로, 매수자를 위한 유동성 공급은 (차입)공매도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의 공매도를 사실상 금지시켰다는 것은, 시장의 원활한 거래 기능을 거래소가 스스로 차단시켰다는 말과 같다. 

      파생상품 시장조성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식시장 시장조성자 기능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마비상태였다. 올해 주식시장 시장조성자 일평균 공매도 규모는 이미 '제로'였다. 원활한 호가 공급을 위한 공매도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문제는 지난 2021년 9월 시작됐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시장조성자들이 '시장 교란 행위'를 했다며 5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 후에도 시장조성자들이 공매도를 자행하고 있으며, 불법 공매도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당시 일부 투자자 단체의 주장에 금융당국이 동조하는 모양새였다. 

      이 조치는 2022년 7월 금융위원회가 '혐의 없음'으로 결론내며 없던 일이 됐다. 과징금은 사라졌지만, 시장조성자로 참여하던 증권사들은 규제 리스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과징금 부과 전 코스피ㆍ코스닥 각각 14곳이었던 주식시장 시장조성자 수는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코스피 6곳, 코스닥 5곳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시장조성 대상 종목은 670여개에서 540여개로 줄었고, 시장조성 종목의 거래 체결율도 60%에서 48%로 급락했다.

      올해 상반기엔 신한투자증권이 시장조성자 지위를 포기했고, 하이투자증권도 코스닥 시장조성자 지위를 반납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시장조성자 포기를 검토 중인데, 지난 3분기 시장 조성 의무이행률이 코스피ㆍ코스닥 모두 0%로, 사실상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성자 제도는 미국ㆍ영국 등 선진 증시는 모두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국내 증시에도 2016년 도입됐다. 국내외 연구 결과는 시장조성자 제도가 ▲거래 체결 가능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 유동성 지표를 크게 개선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의 변동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이는 통념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시장조성 대상 종목 수는 2018년 82개에서 574개로 크게 증가했다. 이 기간 새로 시장조성 대상이 된 종목들에 대한 분석 결과, 이들 주식의 주가는 평균 44% 상승했다. 해당 종목에 대한 유동성이 공급돼 거래가 늘면서 주가의 변동성이 커졌지만, 결국은 주가가 오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수십년간 국내외에서 실증된 것이다. 1997년 프랑스의 연구결과에선 시장조성 대상 종목들이 평균 5%의 초과수익률을 달성했다. 2013년 유로넥스트 대상 연구는 시장조성자 제도 도입이 평균 3.5%의 초과수익률을 발생시켰음을 확인했다. 파생상품시장에서도 2004년 시카고상품거래소 대상 연구 결과 시장조성자가 가격발견 속도와 효율성을 개선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장조성자에 대한 과징금 부과, 그리고 이로 인한 시장조성자의 위축은 이미 국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월 자본시장연구원이 코로나19 기간에 실행된 공매도의 규제 효과를 분석한 결과, 공매도 재개 이후에도 국내 증시는 시장의 가격효율성, 변동성, 유동성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연구원은 그 배경으로 시장조성자 위축이 공매도 재개 조치의 긍정적 영향을 상쇄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거래소는 또 다시 시장조성자들에게 반(反) 시장적인 행위를 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여론에 타협하는 듯한 정부와 거래소의 움직임을 보며 추가 규제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거를 앞두고 이전부터 논란이 돼오던 '시장조성자 증권거래세 면제' 정책 폐지 등 더 강한 제재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무력감을 호소한다. '친(親) 시장'과 '자유주의'를 표방한 정부의 정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정부는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시장조성 종목 거래세 면제 폐기, 시가총액 10조원 이상 종목 대상 제외 등 시장조성자들의 활동을 위축하는 규제를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도입해왔다"며 "명분없는 공매도 전면 금지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시장조성자 제도까지 더 무력화시킨다면 1992년 자본시장 개방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선언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공매도 전면 금지 이후에도 코스닥 공매도가 늘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지난 6일 코스닥 공매도 총 대금은 1649억원으로, 3일 2744억원 대비 40% 줄었다. 업틱룰 예외를 적용받는 시장조성자ㆍ유동성 공급자 공매도는 3일 772억원에서 6일 1649억원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코스닥 전체 거래대금이 6조원에서 11조원으로 급증한 탓으로 분석된다. 

      특히 코스닥150레버리지ㆍ이차전지테마 등 ETF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며 해당 ETF 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가 늘었다는 지적이다. 코스닥 전체 거래 대금 중 공매도 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일 4.08%에서 6일 1.46%로 오히려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