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공회전인 티빙-웨이브 합병…감정의 골만 깊어진 CJ-SK
입력 2023.11.09 07:00
    상황 악화에 올해부터 합병 논의 재점화
    기업가치 산정·합병비율 두고 이견 여전
    실익 모호하지만…딱히 남은 카드 없기도
    수년째 이어진 SK와 CJ 공회전,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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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재개된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 논의가 제자리걸음이다. 서로의 기업가치를 두고 이견이 커지면서 사실상 논의가 잠정 중단된 상태인 가운데 과연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SK와 CJ 간의 각각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와 티빙(TVING) 합병과 관련된 논의가 좀처럼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들어 양측은 OTT 사업 적자 부담이 불어나자 힘을 모아 대책을 마련하려는 분위기였다. 협의에 속도가 붙는가 했으나 이제껏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SK와 CJ 대기업간 딜이다보니 그룹 차원에서 따져야 할 점도 많다는 지적이다.

      작년 웨이브와 티빙은 각각 1213억원, 119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점유율 확대가 흑자전환의 필수 조건이지만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작년 티빙과 시즌(Seezn)이 합병하며 국내 1위 사업자가 됐지만 시장 영향력은 크지 않다. 점유율을 극적으로 높일 방안이 많지 않다 보니 합병 카드는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웨이브-티빙 합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서로가 상대의 기업가치를 어떻게 보느냐다. 기업가치에 따라 합병비율 등이 갈리기 때문에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없다. 플랫폼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의 기준이 될 지표가 많다 보니 기업가치 산정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SK스퀘어나 CJ ENM 모두 상대에게 많은 것을 내줄 만큼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 SK스퀘어는 거느린 사업들의 부진이 이어지며 재무적투자자(FI)에 돈을 돌려주기도 빡빡한 상황이다. 웨이브 역시 투자자에 돈을 돌려줘야 하는 터라 몸값을 낮추려 할리 없다. CJ ENM 역시 해외 M&A 부담에 티빙 실적 부진까지 더해지며 난처한 상황이다.

      OTT 플랫폼의 가치는 콘텐츠 제작 및 공급 능력도 주요 요소다. 웨이브는 KBS, MBC, SBS 지상파 3사가 주주인 ‘지상파 콘텐츠’를 차별점으로 내놓은 OTT다. 그런데 내년 8월 지상파와의 콘텐츠 제공 계약이 끝나는 만큼 ‘그 다음’에 대한 질문이 나올 만하다. 방송사들은 내년 예상 콘텐츠 상당 부분을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웨이브-티빙 통합 과정에서 지상파 주주들은 제외할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독점권이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방송국과 함께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가뜩이나 콘텐츠 제작 및 마케팅 부담이 큰데 주주들을 내보낼 자금까지 마련하기엔 빠듯할 수밖에 없다.

      합병 작업이 질질 끌리면서 SK와 CJ의 피로도도 높아지는 모습이다. 양측은 합병에 대해 여전히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CJ ENM이 지난 8월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플랫폼 합병은 사실상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현재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옵션”이라고 밝힌 정도가 한발 나아간 입장이다. 여러 추측이 난무하다 보니 언급 자체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다만 속내는 탐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공격의 강도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보니 서로 관계가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거래가 진행되지 않은 원인을 상대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0년 유영상 SK텔레콤 당시 부사장이 “웨이브가 CJ의 OTT 티빙과 합병하길 바란다”는 ‘깜짝 발언’을 하자 CJ는 손사래를 쳤다. 이후 티빙-시즌이 합쳐지고, 투자자 압박도 커지면서 SK 쪽의 합병 의지가 더 크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제는 CJ ENM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합병 필요성은 느끼더라도 무리한 M&A로 인한 원죄가 있는 상황에서는 적극 나서기 어렵다. 진행 여부부터 가치 산정까지 CJ㈜의 뜻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1위 통신기업과 국내 대표 콘텐츠사 간 감정 싸움 양상으로 이어지면 거래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극적 화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시선도 있다. 각자 생존이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신흥 강자 쿠팡플레이의 부상도 부담이다. SK스퀘어도 CJ ENM도 끝까지 가면 남는 것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냉기류가 흐르지만 2015년에는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M&A 후 스튜디오드래곤 지분을 인수해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플랫폼끼리의 합병은 기업가치 산정에서 복잡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진 않을 듯하다”며 “CJ와 SK측 입장이 다르고 합병을 해도 시너지가 불분명하다보니 서로 굽히기가 어려울 텐데, 더욱 절실한 쪽이 시도를 계속하지 않을까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