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부실 가속화…연금·공제회의 폭탄 돌리기 시작
입력 2023.11.10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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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해외 상업용 부동산의 위기설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우량 임차인이 밀집한 미국에서조차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 하락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소비 위축에 따른 공실률 증가 여기에 급격한 금리 상승에 신규 자금 유입까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하고 있다.

      자칫 추후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저금리 시대 공격적으로 해외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던 우리나라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자들에 미칠 영향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기설이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위기에 대한 체감도가 아직까지도 그리 크지 않은게 사실이다. 해외 부동산 자산은 현재 가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현재 가치를 장부에 반영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손실을 확정한 기관관들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의 해외대체투자 잔액은 1153억달러(약 150조원)이다. 특별자산(인프라와·사모투자) 투자는 약 64%(94조원), 부동산 투자는 25%(약 56조원) 수준이었다. 투자는 대부분 북미(49%)와 유럽(28%)지역에 편중돼 있고, 대부분 중·후순위 투자로 구성돼 있다. 전체 투자가운데 국민연금 973억달러(약 126조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연기금 및 공제회의 투자 규모는 약 180억달러(약 24조원)이다.

      오랜 저금리 기간 동안 대체투자는 비교적 높은 기대 수익률로 기관투자자들이 주목하는 투자처로 각광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해외 상업용 부동산은 후순위로 참여할 경우 두자릿수 수익률도 기대할 수 있단 점에서 수익률에 목마른 기관들이 대거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실제로 북미와 유럽의 경우 비교적 우량한 임차인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에 중순위·후순위 투자자 원금손실을 걱정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손실을 확정한 사례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머나먼 한국 땅에서 투자자를 모집할까”라는 우려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미국과 유럽 부동산 시장에서 큰 손이 됐다”는 자부심(?)에 묻히던 시절이었다.

      상황이 급 반전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하면서부터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재택 근무가 보편화한 미국과 유럽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엔데믹 이후에도 사무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피스의 공실은 늘었고, 때마침 오르기 시작한 금리는 기업들이 사무실을 점점 비우는 요인이 됐다. 엔데믹 이후 호황을 누리는 우리나라의 오피스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국내 연기금·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직접 투자 또는 부동산 펀드를 통한 투자를 집행해왔다. 주로 중순위 투자로 불리는 메자닌 투자 또는 후순위 투자에 집중돼 있다. 선순위는 대부분 은행과 비교적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지향하는 금융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공실이 늘어가는 오피스의 매물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물의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담보 물건을 매각하면 당연히 선순위 채권자가 투자금을 가장 먼저 돌려받는다. 중순위, 후순위 채권자인 메자닌 투자자들은 선순위 채권자의 자산 처분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매각을 통해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 없음을 의미한다. LTV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를 막기 위해선 중순위·후순위 출자자들이 추가 출자를 해야한다. 현재는 선순위 채권자인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추가 출자를 요구하고, 국내 중·후순위 기관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추가로 출자에 나선다고 해도 투자 대상의 가치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가 출자에 나섰는데 투자 대상의 가치가 더 떨어지면 손실이 더 커지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지금으로선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경기의 회복, 그리고 부동산 업황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일부 금융기관들에선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손실을 막겠단 취지로 리파이낸싱 펀드 조성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임시방편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기관투자자들에 손절의 타이밍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상황. 모든 연기금 공제회 이사장과 최고투자책임자(CIO)들도 이 같은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최근 공제회 CIO의 모임자리가 생길 때마다 항상 주제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잠재 손실은 점차 커지고 있는데 추가 출자에 나서긴 어려운 상황에서 폭탄 돌리기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EOD가 발생하거나, 투자금 회수 움직임이 없는 한 기관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손실을 확정할 의무는 없다.

      국내 공제회 CIO들은 2년 또는 3년의 공식임기에 1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하다. 상당수의 CIO들은 2021년과 2022년 선임됐는데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체 또는 임기 연장의 기로에 선다. 해외 부동산이란 뇌관을 끌어안고 있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 8월 연기금과 공제회의 대체투자 현황을 전수조사했고, 금감원도 기획재정부를 통해 해외 부동산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부동산 투자 현황(2023년 6월말 기준 55조8000억원)을 발표하면서 "금융회사의 양호한 자본비율 등 손실흡수 능력 감안시 해외부동산대체투자 손실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기관들, 특히 은행을 비롯한 돈 잘버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금융지주사들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금감원은 각 업체별 익스포저에 대한 공개는 거부했다. 시장에 미칠 영향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진짜 부실의 뇌관으로 거론되는 연기금과 공제회부터 촉발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연기금과 공제회의 부실은 수익자들의 불이익과도 직결된다. 해외 부동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언젠가 한번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턴 그 충격파를 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