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처럼 과점화 전망도 나오는 전기차…쌓아둔 배터리 수주는 어떻게 될까
입력 2023.11.13 07:00
    취재노트
    속도 조절 들어간 '전동화'…테슬라처럼 깎기 어려운 속내
    마진 포기해도 SW로 벌 수 있는 테슬라…수익 모델 달라
    점유율이 곧 진입장벽…아이폰 후 스마트폰 '과점화' 유사
    전기차서도 탈락자 나오면 2차전지 수주는 통으로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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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완성차 업체가 전동화 전환 속도 조절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유럽 각지에 합작법인(JV)을 짓는 식으로 활발히 진행된 배터리 파트너십도 철회 또는 연기 소식이 늘어난다. 고금리 장기화, 경기 둔화, 소비심리 위축 등 이유로 전방 시장 판매가 둔화하고 있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좀 더 솔직한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테슬라의 가격 하락"이 판매 둔화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10월까지 전 차종 가격을 연초 대비 20~30% 정도 깎았다. 올해 가격을 내린 전기차 1~4위가 테슬라 모델S·Y·X·3 순으로 집계될 정도다. 경쟁사도 줄줄이 가격을 인하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하반기 들어 월 판매 추이는 주춤한 모양새다. 

      테슬라만큼 가격을 깎지 않았으니 덜 팔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테슬라가 원흉인 것처럼 슬쩍 흘리고 있지만 속내엔 ▲테슬라처럼 가격을 깎을 수 없고 ▲그렇게 깎았다간 뒷감당이 안 되는 데다 ▲이 참에 투자 계획을 다시 따져보잔 셈산이 깔려 있다. 테슬라 이후 전동화 전환에 나선 완성차 기업 대부분은 순수 전기차 시장에서 이렇다 할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지난해 131만대를 판매, 연간 영업이익률은 16%를 기록하며 중국 BYD를 제외한 경쟁사 전체를 압도했다. 규모의 경제로 인한 고정비 절감 효과도 한몫 했겠지만 전반적인 생산·고용·판매구조가 기존 완성차 기업과 판이하게 다른 덕이 크다. 반면 완성차 기업의 사업 전체 마진이 대체로 5~10% 선이다. 기존 내연기관과 캐피털 등 금융부문 수익으로 적자인 전기차 사업에 투자하는 구조다. 

      테슬라 역시 마진을 내려놓고 가격 인하 경쟁을 주도하면서 경쟁우위 희석 등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3분기 테슬라 영업이익률은 7.6%대로 떨어져 완성차 업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실적 발표 이후 폭락한 주가는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200달러 이하까지 떨어졌다. 

      언뜻 테슬라 역시 점유율 확대를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에선 정반대 시각도 적지 않다. 테슬라 수익 모델 자체가 판매 시점 대당공헌이익(ASP)을 남겨야만 하는 완성차 제조업 과 다르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테슬라와 경쟁사 간 하드웨어(HW) 측면 기술 격차가 1이라면 소프트웨어(SW) 기술 격차는 10 이상, SW와 HW 통합 생태계로 넓히면 100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라며 "일반 완성차 업체 실적이 연간 판매대수에 ASP를 곱하는 식이라면 테슬라는 누적 판매량에서 자율주행 SW 구독 등 서비스 매출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판매 대수가 늘어나면 잠재 SW 서비스 매출기반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기술적 완성도 개선과 플랫폼 선점 효과까지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다. 테슬라는 가격 인하와 동시에 내년 연말 자체 슈퍼컴퓨터 도조(Dojo) 성능을 최정상급 수준으로 확장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D1 칩 양산 준비에 돌입했다. 판매 확대로 늘어날 정보를 SW 서비스로 재가공하고, 인공지능(AI)까지 상품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달리 보자면 추격자인 완성차 업체들이 점유율 경쟁을 따라갈 유인이 갈수록 흐려지는 구도다. 판매·생산 목표를 다시 따져봐야 할 수준으로 경쟁 지속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완성차 고객사들이 계획대로 SW 역량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는 걸 넘어 지난 100년 내연기관차에서 쌓아둔 브랜드 가치가 전기차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 회의감을 느끼는 것 같다는 불안감도 전해진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SW 매출 비중 30% 목표치를 설정한 것도 사업 모델, 수익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장기 경쟁이 불가하다 판단했기 때문인데 시장 기대는 솔직히 반반"이라며 "미국이나 유럽 OEM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SW 관련 인재를 구하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개화기와 비슷한 흐름이란 분석도 많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이 줄줄이 퇴출되다 삼성전자나 화웨이 정도가 남은 것처럼 전기차 시장 역시 장기적으론 과점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애플은 핵심 반도체부터 자체 운영체제(OS), SW 플랫폼까지 수직계열화해 이동통신단말기가 아닌 새로운 컴퓨팅 기기 시장을 열고 자체 생태계를 구축했는데 테슬라 역시 동일한 전략을 따르고 있다. 

      최근 본격화한 전방 완성차 기업의 전동화 속도 조절을 과점화 전조 증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스마트폰 시장과 단순 비교하기엔 교체주기나 판매·유통·소비 방식 차이 등으로 시일이 걸리겠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도 결국 탈락자가 나올 거란 얘기다. 이들을 고객사로 둔 2차전지 산업에 있어선 단순히 내년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넘어 특정 고객사를 향한 수주가 통으로 증발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인수합병(M&A) 자문 업계 한 관계자는 "대당 수천만원, 10년 이상 이용하는 모빌리티 시장이 100만원 안팎 스마트폰처럼 빠르게 재편되긴 어려울 거란 시각도 있지만, AI 시장 개화로 자율주행 구현 등이 앞당겨지면 또 모른다는 반박도 있다"라며 "이미 M&A 시장에서도 테슬라, BYD 외 탈락자가 나온다거나 일부 2차전지 밸류체인이 금새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단 아이디어를 투자 결정에 반영하는 측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