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장 후보 중 은행을 대변해 줄 사람이 없다"
입력 2023.11.15 07:00
    취재노트
    오는 16일 제 15대 은행연합회장 최종 후보 선출
    5명의 최종 후보 각각 '결격 사유'...'직언' 미지수
    '이자장사' 인식 속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자리인데
    "차라리 정치인 왔으면"...은행권선 뒷말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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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6일 선정될 예정인 제 15대 은행연합회장 자리를 두고 금융가에 뒷말이 무성하다. 현재 물망에 올라있는 다섯 명의 후보 중 제대로 은행을 대변해줄 만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후보마다 '결격 사유'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누가 선정되든 선정 전후로 잡음이 무성할 거란 전망이 많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행들의 경영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새 은행연합회장이 은행을 위한 직언(直言)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지난달 30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고 두 차례 회의를 거쳐 후보군을 선정했다. 후보군에는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 ▲손병환 전 NH금융지주 회장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이 포함됐다. 오는 16일 3차 회추위를 열고 최종 후보자 1인을 선정할 계획이다.

      은행연합회장은 연봉 8억원에 장관급의 의전 예우를 받으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에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하는 영예로운 자리다. 국내 은행들의 고충과 민원을 모아 정부에 전달하고 정책을 함께 조율하는 막중한 책임도 부여된다. 이 때문에 현 김광수 회장을 비롯해 역대 14명의 회장 중 10명이 관(官) 출신 인사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은행의 수익 구조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대통령이 직접 '은행은 독과점 산업'이라고 지적한 이후, 올해 초 금융위원회에 구조개선 태스크포스가 출범했다. 최근 대통령이 또 다시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각 은행들은 부랴부랴 수천억원 규모의 상생금융 패키지를 다시 내놓기도 했다.

      은행과 정부와의 소통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지금,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 중에선 이를 슬기롭게 해결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다섯 후보 중 유일한 관(官) 출신인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차관을 거쳐 2010년 KB금융지주 사장에 취임했고, 2013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14년 10월 퇴임 이후 10년에 가까운 공백기가 존재한다. 은행연합회가 회장직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지 3년 이내의 현직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쉽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임 전 회장이 이른바 'KB 사태'의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당시 임 회장은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당시 이건호 행장과 극한 대립을 반복했고, 금융위로부터 3개월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사태로 인해 KB금융은 사외이사를 포함, 이사회 전원을 교체하는 쇄신을 거쳐야 했다.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씨티은행을 이끌었다. 퇴임 후 2021년 토스뱅크 사외이사에 합류했고, 2022년부터는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전 행장은 재임 시절 은행장 중 최고 연봉을 받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본사에 배당하며 금융당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다. 또한 박 전 행장 재임 당시 한국씨티은행은 2014년 캐피탈 매각, 2017년 점포 수 축소(133개→44개) 등 소매금융을 축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결국 한국씨티은행은 박 전 행장 퇴임 직후인 2021년 소매금융업에서 전면 철수했는데, 이는 소매금융 비중이 높은 시중은행 구조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은행연합회장'으로의 역할에 한계로 지목된다.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은 최초 내부 공채 출신 은행장으로, 지난 2010년부터 3년간 기업은행을 이끌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금융산업지원본부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관(官)측 인사로 분류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조 전 행장 역시 2013년 퇴임해 현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약점이라는 평가다. 특수은행인 기업은행에서 평생 커리어를 쌓아와 시중은행이 중심인 은행연합회장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YTN 대표에 취임하며 금융업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는 점도 언급된다.

      손병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농협중앙회 출신으로 농협은행 지점장과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2020년 농협은행장에, 2021년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역대 두 번째 내부 출신 회장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속 위기관리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전 회장은 비교적 짧은 업력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된다. 손 전 회장은 은행장을 고작 1년 역임했을 뿐이고, 회장직 역시 연임하지 못하고 2년 단임으로 물러났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은행 및 지주 최고경영자(CEO) 경험이 짧아 무게감 역시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은행업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인가'에 가장 큰 물음표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015년 신한은행장을 거쳐 2017년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해 신한금융을 6년간 이끌었다. 올해 초 용퇴를 선언하고 진옥동 현 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올해 초까지 현직으로 재임한데다, 은행ㆍ비은행 CEO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손꼽힌다.

      문제는 재임 시절 라임펀드 사태ㆍ채용 비리 등에 휘말리며 논란을 빚었다는 점이다. 라임 사태의 경우 아직 금융위에서 징계 확정이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조 전 회장은 2021년 이후 성과급을 아직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채용 비리의 경우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020년 연임 당시 주주총회 이사 선임 반대율이 43.57%(찬성률 56.43%)에 달하는 등 주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초 은행연합회 회추위가 지난 10일 선정한 회장 후보는 총 6명이었다. 이 중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은행권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분이 선임되시길 바란다"며 후보를 고사했다. 금융권에서는 9년의 재임 기간 동안 KB금융을 리딩뱅크로 끌어올린 윤 회장의 사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누가 회장이 되든 '서민의 고혈을 빠는 은행'이라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을 바꾸기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현 김광수 회장이 전남 보성 출신으로 전 정권때 회장으로 취임해 현 정부에 말이 안 먹힌다는 인식이 없지 않은 만큼, 차라리 '힘 있는 정치인'이 왔으면 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