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해외 부실자산 꺼내는 기관들, 당국회의 때 반성문 쓴다는데…
입력 2023.11.15 07:00
    취재노트
    해외 대체투자 부실에 기관들 각자 ‘반성모드’
    다수 기관들 트렌치에 이름 올려…이해관계 상충
    쉬쉬하는 분위기 여전…부동산 부실 상처 곪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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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기관들 사이에서 협의가 안됩니다. 부실 문제가 발생하면 촌각을 다툴 정도로 해결 방안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는데 국내는 이해관계가 엇갈려 결론이 안 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금융 당국 회의에 참석한 모 보험사 임원이 내놓은 반성의 목소리다. 최근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해외부동산 부실문제가 단골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연말 평가손실을 반영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자산가치 하락 투자 건들이 또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 금융감독원(금감원) 및 감사원 등 당국에서도 칼끝을 겨누고 있다. 국내 보험사,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금감원, 금투협 등에서 열리는 관련 회의에 불려가고 있다. 손실분을 방어하기 위한 펀딩에 정부의 독려를 부탁하기도 하고, 같은 투자자산에 묶인 기관들과 어떻게 합의를 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일부 대체투자 담당 임원은 문제가 발생한 딜(거래)의 운용사 담당자를 소환해 ‘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냐’며 따져 묻는 경우도 이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안전자산’으로 불리던 대체투자 부문에서 연일 사건사고가 벌어지자 기관들은 적지 않은 당황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의 해외대체투자 잔액은 1153억 달러(약 150조원)이다. 대부분 북미나 유럽 쪽 자산이고 중후순위 자산이 많은 점도 문제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한 데에는 고금리, 코로나 등 외생변수 요인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제 남은 건 해결방안이다. 그런데 업계에선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해당 문제가 해결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데 주목한다. 가장 큰 원인으로 단일 투자건 내 서로 다른 트렌치에 국내 여러 기관들이 들어가 있어 단시간에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중순위 채권자들은 자산가치 하락을 발생시 최악의 경우 추가 출자를 통해 선순위 채권까지 떠안을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는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보니 예기치 못한 요인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중순위 채권자들이 직접 나서 선순위 채권자를 설득해 운영권을 가져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해당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에 선순위보다 이자율이 높은 것이 중순위, 후순위 채권자라는 인식도 만연하다.

      반면 국내 기관들은 부동산 경기 호시절, 해외부동산 투자시 중순위나 후순위 채권에 다수 투자를 해뒀지만 부실자산 발생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는 점이 패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작년 뉴욕 20타임스스퀘어나 시카고 더드루의 경우 국내 기관들끼리 합의가 안돼 해외 에쿼티 투자자들에 의해 대응 권한을 빼앗긴 적도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보신주의’ 성향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체투자는 손실이 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부실자산을 하루라도 빨리 털어버려 작은 손실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들도 덮어두고 있다가 오히려 손실규모를 키우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파리의 한 오피스 빌딩 투자 건을 두고 국내 공제회 및 생보사들의 추가 출자 결정이 한참 뒤에야 이뤄진 바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보유한 해외 자산의 경우엔 한 연기금이 끝내 추가 출자를 거부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전언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국내 기관들은 순환보직이 많다보니 남은 임기 동안에만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매각 또는 추가 출자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에 일부 기관들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부실자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추가 출자를 하는 곳들도 생겨나고, 경쟁 기관들이 어떻게 부실자산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한 아쉬움은 남는다. 해외 투자 부실이 하나둘씩 생겨날 무렵 우왕좌왕 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부실 대응에 힘썼다면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