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앞에 쏟아지는 反시장 포퓰리즘 정책…전 정권 '데칼코마니'여도 상관없다?
입력 2023.11.16 07:00
    Invest Column
    '공매도가 글로벌스탠더드'라더니
    尹 정부 불현듯 공매도 금지 조치
    총선 얼마 안남은 시점에 오해 소지
    "자유 시장경제 기치 내세우더니,
    표를 위해선 무엇이든 다 한다?"
    한국 금융시장 대외평판만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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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통령이 지금이 비상 경제 시국이라며 전례 없는 대책을 주문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모든 상장주에 대한 공매도를 6개월간 금지하기로 했다. 시장의 불안심리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보다 강한 시장 안정조치를 시행한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로 시세차익을 거두면서 주가 하락 폭을 더 키웠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지금 이 얘기는 2020년 3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증시 대책은 바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반(反)시장적 공매도 금지 조치로 시장엔 유동성이 말라붙었고, 외국인과 기관의 자금이 선물시장으로 몰려 대규모 프로그램 매도를 촉발시켰다. 

      이 때가 제 20대 대통령선거를 2년 앞둔 시점이었다.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이미 레임덕 얘기가 나올 때였다. 당시 여권의 큰 지지 세력이었던 개미투자자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 이후 '동학개미운동'으로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오면서 영향력이 커졌다. 공매도의 주체인 기관투자가, 특히 외국인들을 '적'으로 단정 지을 수 있어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데 효과가 있는 카드라는 평가가 나왔다.

      2023년 11월, 판박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고금리 속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지정학적 위험까지 커지면서 우리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그리곤 이번에도 외국인을 '적'으로 삼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공매도 금지의 결정적 사유로 꼽았다. 윤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문제를 더 방치하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뿐 아니라 증권시장 신뢰 저하와 투자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 시작을 알리면서 가장 강조한 포인트가 '자유 시장경제'였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 자체가 이례적인데다가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투자가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공매도는 글로벌스탠더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순간에 그 마음이 뒤집힌 것이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결국 5개월 뒤에 있을 총선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차전지주에 묶여있는 54만 개미들이 공매도 금지 조치에 "윤 대통령이 개미들을 살렸다", "공매도가 없으면 무서운 게 없다"라며 두 팔 들어 환영했다. 급등했던 이차전지주는 다음날 바로 급락했다.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LP)의 공매도는 허용했다. 공매도 금지가 증시 부양에 큰 도움이 되기보단 가격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주가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1400만의 '개미'로 대변되는 여론에 휩쓸려 국내 증시의 불안정성만 더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증권가는 바로 에코프로에 대한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 한 때 주당 150만원대를 넘어갔던 에코프로 주가는 지금 60만원대로 떨어졌고, 하나증권은 적정 주가를 42만원으로 하향하며 매도 의견을 냈다. 글로벌IB 골드만삭스는 현재 22만원대의 에코프로비엠의 목표가를 12만원으로 제시했다. 공매도의 필요성을 역으로 보여주는 셈이라는 얘기가 나올법도 하다.

      개미들과 증권사의 간극이 커질수록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이차전지주 매도 리포트를 낸 연구원을 찾아가 '매국노'라며 직접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개미들은 이제 에코프로를 지켜야 한다면서 공매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매도 사안뿐만이 아니다.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압박의 모양새도 전 정권과 현 정권은 닮았다.

      전 정권에선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증권사의 신용융자 금리 인하를 압박해 일부 증권사가 금리를 낮춰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 시중은행들에 실수요자를 위한 전세자금 대출 완화를 주문했다. 당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5~6%로 제시한 상황인데 추가적인 가계대출 요구에 은행들은 난색을 표했다.

      현 정권에선 윤 대통령이 직접 은행을 겨냥해 한 마디 날렸다.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크다는 이유로 "은행이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은행들은 물론 증권사들까지 금리 인하 움직임에 동참해야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비은행 사업을 많이 하면서 리스크가 커졌다고 지적하고, 지금은 비은행 사업은 안하고 은행 사업으로 이자 장사만 한다고 지적한다"며 "금융권도 비판 받을 건 받아야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권이 '죄인'이 되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권이 내놓을 법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민심 이슈를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총선이 임박해오면서 반시장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여야(與野) 구분 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금융권, 외국인은 좋은 타깃이 된다. 다수의 표를 취하려면 소수의 기득권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후유증은 예상보다 크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이미 외국인의 자본투자가 없으면 언제든 멈춰버릴 수 있는, 외국인의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시장이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금융시장의 글로벌 자본들이 유입된 배경은 중국 금융시장의 폐쇄성과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대체시장이 됐고 일본 금융시장보다 더 활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장점이 자유 시장경제를 주창한 정부 아래에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글로벌IB 관계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면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의 체력을 키우는 것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어느 정권이든 가장 쉬운 방법, 즉 외국인을 끌어내려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고 한다"며 "한국 정부의 시장에 대한 원칙과 철학의 부재를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내비친 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금융시장 수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동북아 금융 허브 구상의 이전으로 한참 회귀한 듯 하다. 정치권의 금융 인식 수준은 선거를 치를수록, 정권이 바뀔수록 낮아지고 있다. 과거엔 한국 금융사들의 혁신이 부족하다고 지적을 해왔는데 이젠 그 결과가 누구 때문인지 되물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