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가는 카카오, 그룹 재건보다 중요한 건 라이언 구하기?
입력 2023.11.16 07:00
    수사범위 확대되자 김범수 창업자 재등판
    쇄신방안 핵심은 결국 외부 감시기구
    "삼성과 달리 자율적 설치" 강조하지만
    경영보다 사법리스크가 더 큰 문제 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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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카카오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문어발식 확장 과정에서 수많은 논란과 경영진의 모럴헤저드 이슈가 끊이지 않았지만 큰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웠던 카카오였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인수가 그룹의 존망을 좌우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 의혹은 그룹의 전방위적인 수사로 진행됐고 그 칼날이 창업자에게까지 다가오자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그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창업자가 재등판 해 외부 통제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시덥잖다. 진정 누굴 위한 쇄신이냐는 것이다.

      카카오가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한 이래로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이 대외적으로 첫 메시지를 내놨다. 지난 13일 카카오모빌리티 본사에서 열린 '3차 카카오 공동체 비상경영회의'에 참석해 "모든 서비스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도 높은 쇄신 작업을 예고했다. "카카오 창업자로서 많은 분의 질책을 정말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준법과 신뢰위원회 등 외부 통제도 받으며 신속하게 쇄신하겠다"고 말했다.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열여놨다.

      김 창업자가 밝힌 쇄신 작업의 핵심은 역시 외부에서 회사를 감시하는 준법경영기구를 자율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룹에서도 이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카카오 측은 "그룹이 스타트업으로 커와서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며 "우리가 노력은 했지만 국민이 우리의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만큼 일반 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기업활동을 요구 받고 있고 이에 외부 감시기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외부에서 회사를 감시하는 준법경영기구를 만든 사례는 삼성이 유일했다. 이에 카카오가 삼성을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선 "삼성을 레퍼런스 삼아서 실효성 있는 위원회를 만들겠다"면서도 "삼성은 법원의 명령으로 만든 것에 반해 카카오는 창업자가 큰 의지를 갖고 내부의 필요성에 의해 만든 것"이라며 거리를 뒀다.

      그동안 카카오 주가는 급락했다. 물타기를 계속해야 하는 개미들의 아우성도 그치지 않고 있다. 카카오의 쇄신 계획에도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진정 이용자나 투자자, 주주들에게 유의미하냐는 거다.

      카카오가 강조한 준법경영기구의 유효성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박했다. 이로 인해 그룹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고, 그저 '뭐라도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냉혹한 평이 지배적이었다.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올해 인사고과에서 'S'를 받은 사람이 내년에도 'S'를 받겠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만 'F'를 받은 사람이 'F'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면 기대가 되겠냐"며 "내부통제도 제대로 안되는 회사가 준법감시 운영을 강조하는 것에 큰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결국 이는 김범수 창업자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처럼 외부로부터 감시를 받음으로써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것 자체가 현재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회장에게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의미가 있다. 카카오는 목표와 방향성이 다르다고 밝히고 있지만 결국은 일맥상통한다는 거다.

      로펌업계 관계자는 "마찬가지로 자의냐 타의냐를 떠나 결국 수사 칼날이 다가오고 있는 김범수 창업자가 선제적으로 이 카드를 꺼내든 것 자체가 삼성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여러 논란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 창업자가 직접 외부 감시기구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결국 창업자 본인이 살기 위한 방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내부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 오히려 카카오그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시장에선 카카오의 진짜 위기가 '감시'의 부재가 아니라고 본다. 더 이상 혁신이 없고 성장하지 못한다는, 즉 기업가치를 더 이상 끌어올릴 수 없다는 점이 진정한 위기라고 지적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산업적 지위가 유지되겠지만 우선 지금 분위기에선 기업가치에 대한 할인이 이어질 것"이라며 "국내의 보수적 소비자 성향 덕분에 플랫폼으로써 유의미한 사용자 이탈이 있진 않겠지만 그만큼 이제 '카카오'라는 이름이 '무겁고 보수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더 이상의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대체재들이 있고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꼽았다.

      그러다보니 결국 꺼낼 수밖에 없는 카드는 영역 확장, 이를 위한 투자 유치와 상장이라는 지금의 문어발식 확장뿐이었다. 이것에 발목이 잡혔고 다시 과거 같은 방식의 확장은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창업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하고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열었다.

      증권가 상당수는 카카오의 전망을 밝게 내놓지 않고 있다. 경영 환경 개선 가능성보다 사법리스크 현실화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진짜 카카오와 김 창업자가 가야 할 길은 '라이언 구하기'가 아닌, '카카오 구하기'라고 투자자들과 주주들은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