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기만 기다린다"…韓 부동산 매물 노리는 외국계 운용사들
입력 2023.11.16 07:00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위기에 버틴 한국 시장
    고금리 여파는 이미 PF 시장에 전이
    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 등 공급과잉 투자처 주목
    국내 기관은 '손절', 외국계는 매수 대기중
    GIC·브룩필드·KKR 등 부동산 큰 손들 돈 쏠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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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국내 기관들이 최대한 발을 빼면서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반대로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곧 다가올 기회를 준비하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간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글로벌 부동산 위기론에도 불구, 그나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왔다. 각 국의 오피스 공실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이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서울은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주요 권역의 오피스 공급이 적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으로 풀이됐다. 주요 국가들보다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복귀가 빠른 점도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는 역시 피하기 어려웠다. 

      올해 3분기 서울 주요 업무지구의 공실률은 10분기만에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진 오피스의 가격도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진 않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반영되기 시작한다면 이제껏 버텨온 만큼 앞으론 하락세가 더 가팔라 질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고금리의 여파는 이미 몇몇 프라임오피스를 제외한 전 부동산 섹터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위기는 이미 상수가 됐고, 시행사와 시공사 그리고 대주단을 비롯한 금융기관까지 파장이 확대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에 공급예정인 주택은 그나마 현상유지가 가능한 상황이라고해도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 시설의 PF는 자금조달 방안이 꽉 막혀있다고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아예 손을 대지 못하는 일부 사업장들을 제외하고 대출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해외 부동산 투자의 손실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부동산 및 대체투자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을 늘리긴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반면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이 같은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곳이 많다. 자금만 충분하다면, 더 낮은 가격에 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굳이 부실채권(NPL) 투자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데이터센터 등 공급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투자처에  집중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한 부동산 투자 경험이 있는 글로벌 운용사들은 대부분은 자금 조달을 마치고 투자 시기(부동산 가치 하락기)만을 조율하고 있다"며 "그동안 수요가 풍부해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상업용 시설들의 가치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투자하고, 추후 업사이클이 도래했을 때 확실한 차익을 남기겠단 전략"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이미 한국 부동산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잡았다. GIC는 서울파이낸스센터(SFC)·강남파이낸스센터(GFC)·콘코디언빌딩 등에 상업용 오피스 투자가 활발했는데 올해 들어선 투자가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대신 CIC가 눈을 돌리고 있는 곳은 데이터센터이다. 물류센터와 프라임오피스 등의 보유 자산의 추가 투자를 늘리는 것보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확산으로 인해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센터의 투자를 늘리겠단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앤드루 뷰익 브룩필드자산운용 동아시아 대표는 최근 한 행사에서 "아주 매력적인 수준까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제는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것"이었다. 

      브룩필드는 현재 한국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매물을 물색하는 운용사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엔 존스랑라살(JLL)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콘래드호텔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대신에 역시 GIC와 유사한 상업용 부동산 투자처 물색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가운데 가장 빠르게 한국 시장 투자를 늘려가는 곳 중 하나다. 남산스퀘어와 더케이트윈타워·센터필드 등에 투자한 이력이 있는 KKR은 올해 초 SK브로드밴드의 본사 사무실이 있는 남산그린빌딩도 인수 했다. 

      KKR은 중견 건설기업, 태영그룹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태영그룹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금조달을 추진중인데 "태영건설과 협상테이블에는 KKR 밖에 앉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확실한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태영건설의 대출 과정에서 상당수의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KKR은 수년 전부터 부동산 부문 인력을 시장에서 대거 영입하고 있는데 최근엔 임원급뿐 아니라 주니어급 인력까지 보강하면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다. 원화에 비해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선 역시 환차익 효과를 노릴 수 있는 해외 투자자들이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기관투자자를 제외한 상당수의 외국계 PEF 운용사들 또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 부동산 시장을 투자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특별한 변수 없이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이 유지된다면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조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펀드레이징 걱정이 덜하고 환율 효과까지 노릴 수 있는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투자자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향후 부동산 가치의 하락기에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해외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