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에 기업들 교환사채(EB) 발행도 차질 우려
입력 2023.11.24 07:00
    가격 형성 기능 사라지고 해외 투자자도 주춤
    불확실성에 EB 등 주식 관련 거래 추진 난항
    위험 헤지 수단 마땅찮은 점이 가장 큰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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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함에 따라 기업들이 교환사채(EB)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거의 중단될 전망이다. 당장 공매도의 가격 확인 기능이 약해지면서 투자자를 설득할 명분이 줄어들었다. 공매도를 활용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기법(헤지)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정부는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거래 차단 시스템이 갖춰지는 내년 6월까지 신규 공매도 계약을 막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매도가 개인 투자자에 큰 손실을 입히고 있다며 금융감독당국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의 공매도 금지 조치는 일시적인 주가 부양 효과,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부적절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반대로 다시 한 번 한국 금융 규제의 예측 불확실성을 확인한 사례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뚜렷한 명분이 없다 보니 당국이 불법 공매도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혈안이라는 시선도 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해외 기관들이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을 줄이며 주식과 연계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아졌다. 유상증자(IPO)는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테마주의 경우에만 흥행했다. 특히 주식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EB는 당분간 발행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있다.

      올해 여러 대기업이 고금리 환경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EB 카드를 꺼내들었다. 발행사 입장에선 주식을 담보로 싸게 채권을 찍을 수 있고, 투자자들은 채권 금리보다는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 윈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매도가 금지되면서 투자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졌다. 공매도의 적정한 시장 가격 형성 기능이 약화했고, 중간에 사고 팔면서 이익을 내는 방식(롱숏전략)의 투자자는 이익 실현의 한 축이 사라진 상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금 난에 EB 발행을 고려했던 대기업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주가 상승 가능성 있는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이 EB 투자의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공매도가 중단된 상황에선 대상 주식 주가의 상승 가능성이 있는지, 전환 시점에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교환할 수 있을지, 나아가 어느 선을 기점으로 발행 가능성을 타진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공매도가 중단되며 EB 발행 등 대기업의 주식 관련 거래가 올스톱된 분위기”라며 “EB나 증자, IPO 모두 롱투자자만으론 투자 수요를 채우기 어렵고 롱숏펀드들도 들어와줘야 하지만 롱숏펀드들은 공매도 중단으로 손해를 보고 있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주식의 교환권에 집중한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식을 빌려(대차) 전환시점 전에 공매도를 실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계 IB들은 EB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발행사 측에 주식도 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주식 대차에 따라 EB 발행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공매도가 막혀 대주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위험 완화 전략을 펴기 어렵다.

      기업들은 EB를 발행하며 교환가액을 시장가보다 높여 설정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주식 기반 EB 발행 시 30%의 프리미엄을 붙였다. 최대한 비싸게 유동화하기 위함인데, 이 경우 주가는 하락 가능성이 더 커지니 숏포지션을 활용한 위험 헤지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자본시장 전문가는 "EB 발행 시 나머지 보유지분을 투자자에 대차 물량으로 열어주느냐 여부가 거래 성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시가보다 높은 교환가액을 설정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숏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하방 위험을 막을 수단이 마땅치 않으면 메자닌 투자 승인을 얻기 쉽지 않다. 중개하는 사람도 걸림돌이 많고, 사려는 사람도 난처하니 양쪽 모두 EB 거래는 공매도 재개 이후로 미루려는 분위기라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매도가 막히면 개별 주식의 선물을 사고 파는 방식으로도 미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다만 선물은 만기 등 여러 제약 요소가 있고 모든 개별 종목이 선물 거래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금이 급한 기업은 EB보다는 보유 주식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세일) 등 방식으로 처분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만기 시 연장, 발행사의 매수청구권(콜옵션) 등 EB의 장점은 포기해야 한다. 작년보다 올해 증시가 더 부진한 상황이라 주식을 그냥 처분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한 IB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에 대주 거래도 막히면서 교환 옵션 투자자들이 하방 위험을 방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졌다”며 “EB를 발행하기 어렵다면 주가가 아쉬워도 블록세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런 증시 분위기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