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기업가치 반토막 난 11번가…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딜레마
입력 2023.11.24 07:00
    5년 전 3兆 넘보던 11번가…1兆 협상도 난항
    SK스퀘어 이사회 콜옵션 행사-포기 모두 '배임' 소지
    이달 말 최종 결론 낼 듯
    사태의 핵심은 결국 기업가치 하락
    대규모 인사 앞두고 책임론 불거질 수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5년 전 2조5000억원이 훌쩍 넘었던 11번가의 기업가치는 현재 절반 그 이상으로 떨어졌다. 최근 SK스퀘어와 큐텐(Qoo10)의 인수 협상 결렬의 배경도 몸 값을 둘러싼 이견이었고, 수 많은 논란을 안고도 SK스퀘어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선뜻 결정하지 못한 이유 또한 결국은 떨어진 기업가치 때문이다.

      콜옵션 행사를 선택하든 포기하든 SK스퀘어 이사회는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SK측에서 어떤 결과물을 도출하든 11번가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큐텐과 SK스퀘어 측이 협상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약 1조원, 최대 1조2000억원 수준이었다. 지난 2018년 FI가 투자할 당시 인정한 기업가치(2조7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수익성 지표는 매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쿠팡과 알리바바 등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강도는 예년보다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 기업가치가 꺾이는 주요 원인중 하나다.

      큐텐과의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SK스퀘어는 다급해졌다.

      기존에 원매자로 거론된 알리바바·아마존 등과 재차 협상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성은 따져봐야 한다. SK스퀘어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는 형태, 즉 구주매각 이외에 유상증자를 비롯한 뉴머니 수혈이 불가피하다. 이커머스 시장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일단' 살아남기 위한 자금만 수 조원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감당할 곳이 나타날지 미지수다. 심지어 십 수년간 흑자를 기록하던 지마켓을 3조4000억원을 들여 산 이마트도 예상과 달리 현재는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공격적으로 이커머스 시장을 확대해나가는 경쟁사들과 달리 11번가 자체가 눈에띄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잠재 인수후보자들도 (11번가에) 신규자금이 얼마나 투입돼야 할지, 자금 투입만으로 소생할 수 있을지 면밀히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스퀘어가 새로운 원매자를 찾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FI 지분 18%를 원금(5000억원)과 이자(연 3.7%)를 더해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 100%를 보유하거나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을 포함해 FI에게 경영권 매각 권한을 넘기는 방안, 즉 FI의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행사 등을 선택할 수 있다.

      SK스퀘어 이사회가 '배임'논란에 휩싸일 수 있단 논리는 단순하다. 현재의 기업가치가 1조원 수준에 불과한데, 5년 전 인정 받은 2조7000억원의 가치로 지분을 되사오는 것은 회사의 손해를 끼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콜옵션이 말 그대로 '선택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대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다.

      국내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가 이사회의 배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다만 지난 5년간 회사의 상황이 너무 안좋아져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PEF) 업계 한 관계자는 "배임의 논란을 아예 배제할 순 없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다양한 선택지의 실익을 따져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배임 논란 때문에 콜옵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콜옵션을 포기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대의 경우도 배임의 소지가 남아있는 건 마찬가지다. FI가 원매자를 직접 찾아나설 경우 큐텐과의 협상에서 거론된 1조원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시장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SK스퀘어 측이 콜옵션을 포기해 손에 쥐는 현금이 얼마 없을 것이란 점도 인지하고 있단 해석이다.

      현재 SK스퀘어는 11번가 지분 80%를 약 1조500억원의 장부가로 반영하고 있다. 장부가 기준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운데 SK하이닉스 지분(20%)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만약 FI가 7000~8000억원 수준에 11번가 지분을 모두 매각한다면 FI는 원금 및 일부 이자를 회수할 수 있지만  SK스퀘어는 오히려 손실을 기록할 수도 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FI에 권한을 넘겨 매각 작업이 진행될 경우 경영권을 쥔 SK스퀘어가 협조할지 여부도 미지수이고 현실적으로 SK의 실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SK스퀘어는 이달말 이사회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평가와 해석의 영역이자 이사회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배임' 논란을 차치하고, 어쩌다 11번가가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됐는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번 거래는 박정호 부회장(당시 SK텔레콤 대표이사)의 대표적인 투자유치 거래로 기록된다. 투자 유치 당시엔 박 부회장과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던 노종원 솔리다임 대표이사(당시 전무), 윤풍영 SK㈜ C&C 사장(당시 상무) 등 그룹의 키맨들이 참여한 거래로 주목 받았다. 당시 SK텔레콤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비통신분야를 부각해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를 봤고, 국민연금이란 굵직한 투자자를 초빙해 거래의 안정감을 더했다. 5년이 지난 현재 박 부회장을 비롯해 현재 이번 11번가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인사는 사실상 없는데, 논란만 남긴 상황이 됐다. 

      SK그룹은 계열사들은 지난 수년간 경쟁적으로 외부자금을 유치해 왔다. 이번 11번가 사태를 둘러싼 SK그룹의 해결 방안에 다수의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또 긴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SK그룹의 평판 리스크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결코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