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매각 기로에 선 11번가…'희망퇴직'이 변수 될까
입력 2023.11.29 07:00
    만 35세 이상, 5년 이상 근무자 대상 희망퇴직
    콜옵션 행사 결정 이틀 앞두고 희망퇴직 발표
    11번가 매각 권한 넘기기 앞선 선제작업?
    "SK가 품든 새로운 원매자가 오든 불가피한 선택"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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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 '11번가'가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대규모 희망퇴직을 통해 몸집을 줄이고 수익성을 다소 제고하겠단 SK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추후 11번가의 매각방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SK스퀘어는 큐텐(Qoo10)을 비롯, 주요 원매자들과 11번가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29일 이사회를 열어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을 사오는 방안 또는 FI에게 경영권 매각 권한을 넘기는 방안 등을 의결한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만 35세 이상, 5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자를 접수하고 있다. 회사는 "넥스트 커리어(Next Career)를 준비하는 구성원을 지원하고 회사의 성장을 위한 차원에서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매해 영업적자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을 줄이겠단 의지로도 해석된다. 

      현재 11번가의 전체 임직원은 약 1200명이다. SK그룹은 앞서 큐텐과의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인원 감축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달 중순 SK그룹이 큐텐 측에 협상 결렬을 통보한 이후 양측은 추가적인 어떤 협의도 없었기 떄문에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로선 큐텐이 아닌 다른 원매자가 나타나 11번가 경영권을 인수하더라도 인원 감축은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11번가의 임직원이 너무 많아 효율화 작업이 필요하단 이야기는 꾸준히 거론돼 왔다"며 "(매각과정에서) 약 3분의 1 이상의 인원감축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콜옵션 처리 문제를 논의할 이사회를 불과 이틀 앞둔 희망퇴직 발표 시기 때문에 "새로운 원매자와 협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선제 작업"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인수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M&A를 앞두고 매각측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는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사모펀드(PEF) 업계 한 관계자는 "11번가의 지분을 계속 보유할지, 매각 권한을 넘길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희망퇴직을 접수하는 것은 (잠재 후보자를 대상으로) 매각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일단 이사회 결과를 지켜봐야 SK측의 구체적인 전략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가 콜옵션을 행사해 11번가 지분 100%를 보유하는 상황에서도 희망퇴직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또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고 FI에 매각 권한을 넘길 경우, 경영권을 보유한 SK측에서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여 매각작업을 수월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했단 명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업이 FI와 콜옵션 및 드래그얼롱 조항으로 갈등을 빚을 때엔, 기업이 먼저 경영권 매각에 나서지도 않고 또 FI의 매각에 협조하지도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력 구조조정은 재무제표에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재차 기업공개(IPO)에 나서든 매각을 다시 추진하든 수익성 제고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핵심 인력들의 유출은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핵심 인력 유치를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과거 이베이코리아의 매각 당시엔 이베이코리아의 핵심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는 시점이었다. 인수를 추진하던 일부 원매자들은 추후 핵심인력 유치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란 점 또한 이를 위한 자금 소요가 상당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롯데그룹은 상황이 달랐다. 역시 이커머스 업체 롯데온(롯데ON)의 성과부진이 이어지는 시점이었고 이 원인을 내부 전문가 부재에서 찾았다. 롯데는 인수전에 나서기 앞서 이베이코리아 출신 인사를 영입 했는데 추후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부족한 내부 전문가 인력을 확충하겠단 복안을 갖고 있었다.

      인력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이커머스 시장이 쿠팡과 네이버의 2강 체제가 굳혀져 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추후에 SK든 새로운 원매자든 대규모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단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