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면 내 덕, 잃으면 은행 탓...'ELS 때리기'에 무너진 원칙
입력 2023.12.01 07:00
    Invest Column
    고령 개인투자자ㆍ신탁ㆍ재투자는 ELS 투자 '상수'
    평소 조기상환 될 땐 별말 없다 손실나면 문제 제기
    공매도ㆍIPO 주관사 이어 다시 은행을 악(惡)으로 지목
    "지난 정부와 같은 포퓰리즘적 행보 실망"
    • ELS는 지난 10년간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 불렸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ELS 등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 101조원 중 개인투자자 비중은 47% 수준이며 ▲이 중 60대 이상 개인투자자 투자금액이 전체 잔액의 42%를 차지했고 ▲개인투자자 투자금액의 76%가 신탁, 특히 은행 신탁을 통해 투자됐으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고 ▲특히 80대 이상은 1인당 평균 1억7230만원을 ELS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 통계는 최근 작성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18년 홍콩H지수 기반 ELS의 조기상환이 일부 실패하자 당국에 조사에 나서 얻어낸 결과다. 앞서 지난 2015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2023년 11월 현재에도 역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고령 개인투자자가 ▲은행 신탁을 통해 ▲ELS에 투자하는 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어진 경향성에 가깝다. 몇 차례 사고를 거치며 이들에 대한 투자자 보호 조치는 점차 강화돼왔다.

      2018년 해당 통계 중 주목할만한 점은 당시에도 투자 기(旣) 경험자 비중이 70%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미 ELS에 투자를 해봤고, 3개월 혹은 6개월만에 조기 상환을 받아, 투자금에 이익금을 더해 재투자에 나서는 고객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한 은행 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수 년간 설명 의무가 크게 강화됐고, 녹취를 통한 투자 의사 확인ㆍ48시간 숙려 제도 등 이중삼중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생겼는데 이를 금융감독원장이 '면피'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며 "평소 조기상환이 잘 될 때엔 아무 말씀 안하시다가 문제가 생기면 불완전판매를 언급하는 고객들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상품들은 2021년 1월 이후 발행된 홍콩H지수 기반 ELS 상품들이다. 앞서 2020년 4분기까지 발행된 홍콩H지수 기반 ELS 상품들은 대부분 조기상환이 정상적으로 완료됐다. 2020년 3월 9400선까지 떨어졌던 홍콩H지수가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어서며 단기 고점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5년 ELS 대란 이후 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원금 손실을 막아줄수 있는 구간)가 넓어지는 등 대부분의 ELS 상품 설계 원칙이 보수적으로 변화했다"며 "그럼에도 홍콩H지수가 이후 2년간 50% 이상 떨어지며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인데, '불완전판매'를 핑계로 이를 구제해달라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산적한 금융 현안 중 금융당국이 지금 이 시점에, 굳이 ELS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지목한다. 공매도, 기업공개(IPO) 주관 증권사에 이어 'ELS를 판매하는 은행'을 악(惡)으로 지목하고, 이를 제재ㆍ징벌함으로써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드려는 포퓰리즘적 접근법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정부의 금융시장 접근법과도 비슷한 맥락을 띄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0~2021년 사모펀드 사태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금융당국은 사실상 금융사에 '전액 배상'을 압박했다. 판매사와 투자자의 책임을 동등하게 묻던 전례를 무시하고, 징벌적인 100% 배상안을 쏟아냈다. 금융회사를 악으로, 투자자를 피해자로 단순 구분하는 모습을 보며 당시에도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행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시장과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현 정부 출범하자 증권가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 같은 기대감은 이달 초 이뤄진 전격적인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ELS 때리기'에 이르러선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차이를 알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현 정부가 원하는 건 '시장 초과 수익률을 내면서도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인 것 같은데, 단언컨데 그런 상품은 금융시장에 존재할 수 없다"며 "개인투자자들만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 금융업 종사자는 투표권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