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에 주느냐, 중단이냐'…막판 장고 이어지는 HMM 매각
입력 2023.12.05 07:00
    가격은 하림, 기타 조건은 동원 우세하다 시각
    성과 필요한 산업은행은 하림에 기울었다 평가
    해운업 관리 우선인 해진공은 매각 반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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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최대 M&A인 HMM 매각이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하림그룹이 동원그룹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대로 매각을 진행하느냐 멈추느냐로 이목이 모이고 있다. 정상 기업은 빨리 시장에 돌려줘야 한다는 금융 논리와, 국내 유일 원양 해운사를 작은 기업에 넘기는 모험을 해선 안된다는 산업적 고려가 막판까지 충돌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HMM 매각 본입찰엔 하림그룹과 동원그룹이 참여했다. 당초 본입찰 직후 인수자가 결정될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아직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매도자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관계 부처가 두 그룹이 제시한 조건을 놓고 막판까지 장고 하는 분위기다.

      HMM 매각의 핵심은 예정가격이다. HMM 주가는 해운업 불황과 영구채 주식 전환 등 일련의 과정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예정가격도 당초 예상보다 높은 6조원 이상으로 정해졌다. 정확한 예정가격이나 두 후보의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내 HMM 매각 계약을 체결한다는 산업은행의 매각 의지를 감안하면 예정가격을 넘은 원매자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하림그룹이 동원그룹보다 높은 금액을 써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요소에만 집중한다면 매도자의 고민은 HMM을 하림그룹에 넘기느냐 마느냐로 좁혀진 형국이다. 다만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미묘한 입장차는 여전한 모습이다.

      산업은행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HMM 매각 강행 의지를 보여 왔다. 한국전력 적자 등 부담이 커지며 투자 지분을 정리해 자본비율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구조조정이 끝난 기업을 민간으로 돌리는 것도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요 과제다.

      올해는 특히 KDB생명 매각, 국적항공사 통합작업도 차질을 빚은 터라 HMM 매각 성과가 더 중요한 상황이다. HMM 매각마저 무산된다면 산업은행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 가격 기준을 넘긴 곳만 있다면 HMM을 매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른 매각 주체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초반부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도 ‘제대로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기업’이 HMM을 인수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일반론으로 보이지만 내면엔 이번 인수후보들의 자격이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것이란 평가다. 모두 HMM보다 기업집단 순위가 낮고, 이 정도로 경기 주기가 큰 기업을 이끌어보지 않았다는 약점이 있다. HMM을 민간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망가져 돌아오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도 매각의 키를 산업은행이 쥐고 있으니 일단 일정대로 진행을 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뒷탈 없이 잘 이끌 후보에게 HMM을 넘겨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고, 인수자의 역량 미달 의혹이 제기되면 국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조건 면에서도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액은 하림그룹 쪽이 높지만 배당 제한, 잔여 영구채 전환 등 조건은 동원그룹보다 빡빡한 분위기로 전해진다. 즉 HMM 인수 후에는 경영권을 간섭받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매도자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진 동원그룹보다는 낮은 정성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인수자금 중 직접 마련한 자기자본 규모도 하림보다는 동원 쪽이 크다.

      이렇다 보니 하림그룹과 동원그룹 측 조력자들의 분위기도 갈린다. 하림그룹 쪽에선 HMM을 일단 인수하면 매도자가 언제까지 견제할 수 있겠느냐는 전망을 하고 있다. 반면 동원그룹 쪽에선 ‘자금 조달의 확실성’이나 ‘부대 조건’ 면에선 하림그룹을 앞선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림그룹이 투자 조건 원안을 고수한 상태로 승자가 된다면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하림그룹 쪽에 마음이 가는 모습이지만 해양진흥공사는 자기돈을 적게 넣고 계약 조건도 박한 곳에 어떻게 주느냐는 분위기”라며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한다는 금융 논리와 해운정책을 감안하면 이번엔 팔면 안된다는 산업 논리가 부딪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 개각이 겹친 것도 변수다. HMM 매각에 중도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4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과거 기획재정부를 거친 박춘섭 현 경제수석이 산업은행에 힘을 실어줄지 관심이 모인다. HMM 매각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온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의 후임으론 강도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이 지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