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선임 반대만 3번…국민연금 이번엔 對 SK 주주권행사 나설까
입력 2023.12.11 07:00
    취재노트
    SK그룹 주총서 반대표 행사 1순위 국민연금
    2016년부터 최태원 회장 선임 매번 반대
    11번가 사태로 투자금 공중부양 위기
    "투자보다 회수, 자산 지키기 위해선 주주권행사必"
    계열사 투자목적 '일반투자'로 변경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능…근거 마련한 국민연금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과 국민연금은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국민연금은 SK그룹 계열사 대부분의 주요주주로 등재돼 있고 SK란 이름값을 믿고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금액만 수 조원에 달한다.

      최근 SK그룹의 11번가 경영권 포기 사태로 입장이 가장 난처해진 기관은 국민연금이었다. 11번가에 가장 많은 금액(3800억원)을 투자했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투자금을 안전하게 회수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설마 SK가 가장 든든한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신의'를 저버릴 수 있을까"하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국민연금은 SK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반대표를 가장 많이 행사한 기관중 하나다. 매년 열리는 정기주총, 특별한 이벤트에 소집되는 임시주총에서 국민연금이 회사와 반대편에 서는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2016년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최태원 회장이 SK㈜ 대표이사직에 복귀하려던 당시 지분 8.4%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2019년과 2022년 3년 주기로 열린 주총에서 최 회장이 대표이사 재선임을 추진하자 국민연금은 매번 반대했다. 그러나 최 회장 선임을 저지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2021년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해 현재 SK온을 설립했다. 당시 지분 8%를 보유하고 있었던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했는데 분할 안건의 찬성률은 80.2%에 달했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분할에 찬성할 때 주요 투자자중 유일하게 국민연금만 반대에 나선 셈이다. 지난 2015년 SK㈜와 SK C&C의 합병 과정에서도 반대표를 행사한 사례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엔 SK하이닉스의 정덕균 사외이사, SK케미칼의 문성환 사외이사 등 선임에 반대했다. 이사의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반대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 최태원 회장 선임 반대만 3번…국민연금 이번엔 對 SK 주주권행사 나설까 이미지 크게보기

      국민연금은 이미 SK그룹 전반에 걸쳐 투자 노출액(익스포저)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내부적으로 SK 계열사에 대한 직간접 투자에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더는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수를 고민하던 차에 최근 11번가의 사태가 겹치면서 향후 투자보단 회수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단 평가가 나온다. 

      사실 국민연금의 보수적인 기조가 강해지면 주요 연기금, 공제회 등도 SK그룹에 대한 공격적으로 투자가 다소 주춤해 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 대형 기관투자자 한 곳은 투자 대상 기업의 자금 회수를 원하고 있지만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당장 국민연금이 SK그룹을 대상으로 한 자금 회수에 나설 유인과 명분은 마땅치 않다. 투자 자산의 대부분은 주식·채권·대체 등 위탁운용사를 통해 보유중이다. SK그룹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자산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해야하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정도란 평가가 나온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주주권행사를 매년 예고하고 있지만, 기업의 경영개선을 비롯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는 아직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한 안건이 실제로 부결되는 사례도 극히 드물고, 국민연금이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SK그룹에 대한 익스포저가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향후 11번가 사태로 인해 투자자와 갈등이 충분히 불거질 수 있단 점이 증명됐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적극적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초부터 국민연금은 다수의 SK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투자목적을 변경했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스퀘어, SK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 대부분에 대해 투자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함으로써 주주권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민연금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해당 기업에 적극적이 관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투자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한다. 이를 통해 경영진 면담, 임원의 선임과 해임 청구, 정관 변경, 서한 발송 등이 가능해진다. SK그룹은 7일 임원인사를 단행, 내년 주주총회에선 대규모 이사 선임이 진행될 전망인데 국민연금이 보다 깐깐한 잣대를 적용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