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도 변화도 택하기 어렵다'…이재용 거취 넘지 못한 삼성그룹 인사
입력 2023.12.13 07:00
    삼성전자 투톱·TF 체제 유지하며 그룹 인사도 '무색무취'
    非TF 출신 인사로 꾸려진 '미래사업기획단' 정도가 주목
    사업지원 TF 한계·내년 불안감에도…관건은 JY 거취 문제
    1월 판결까지 무게추 가늠 어려워…"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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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그룹은 시장 예상과 달리 연말 인사에서 큰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인 삼성전자 부회장들이 자리를 지킨 가운데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그룹 살림을 챙겨온 TF 체제도 지속된다. 특기할 변화라면 미래전략실·TF 출신이 아닌 전영현 부회장에게 신설 미래사업기획단을 맡겼다는 정도다. 이재용 회장 사법 리스크가 재부상하며 안정도 변화도 택하기 어려운 처지가 인사 전반에서 드러났단 평이다. 

      당초 삼성그룹 연말 인사에서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누가 삼성전자로 복귀해 기존 한종희 부회장·경계현 사장 '투톱' 체제를 대체할 것인가 ▲정현호 부회장의 사업지원 TF 체제를 지속할 것인가 두 가지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들 모두 유임하며 계열 전반 인사가 무색무취한 결과를 받아들었단 반응이 나온다.  

      삼성금융 계열사 정도가 사장단이 교체됐지만 삼성생명·금융경쟁력제고 TF 출신 회전문 인사에 그쳤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삼성물산 사장단 인사도 상사부문 이재언 부사장의 승진 정도에 그쳤다. 그룹 3개 TF 체제를 관장하는 정 부회장이 자리를 지킨 만큼 금융·물산을 포함한 계열 전반 인사가 향후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금융 계열 출신 한 인사는 "3개 TF 체제의 정점인 정현호 부회장의 사업지원 TF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삼성물산이나 금융 계열사도 당분간은 '정중동'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드러난 인사로만 보면 지난 5년과 마찬가지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변화라면 전영현 부회장이 삼성SDI에서 삼성전자로 복귀해 대표이사 직속 신설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게 된 것이다. 

      전 부회장은 LG반도체 출신으로 삼성그룹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키워낸 중역으로 통한다. 단장직을 맡은 전 부회장을 중심으로 신사업 발굴과 연구개발을 맡던 정성택 부사장, 이원용 상무가 합류했다. 모두 외부 출신으로 미래전략실이나 사업지원 TF를 거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시선을 끈다.

      벌써부터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단 핵심 경영진 대부분이 유임했으나 이들만으로 안팎에서 제기되는 리더십 불안을 잠재우기 어려웠을 거란 지적이 많다. 관련업계에선 디지털경험(DX)·반도체(DS) 부문 모두 지난 2년 성과가 부진해 내부 책임론이 적지 않았으나 이들을 대체할 인재풀이 마땅치 않은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내년 이후 인공지능(AI) 경쟁이 춘추전국으로 비유되는 때에 미래사업기획단을 새 콘트롤타워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거란 얘기다. 

      미전실·TF 출신 인사에 신사업 발굴과 같은 혁신을 요구하기 어려웠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선 원래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삼성전자로 복귀할 거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미전실·TF를 거친 최 사장은 삼성SDI에 남고 전 부회장이 외부 출신으로 꾸려진 새 콘트롤타워를 맡게 됐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로 최 사장이 내년 전자로 복귀할 준비를 해왔다는 관측이 많았던 터라 전 부회장이 미래기획단장을 맡게 된 것을 두고 놀란 분위기가 전해진다"라며 "미래사업기획단에 혁신·변화를 주문하기 위해 유지·관리로 상징되는 사업지원 TF 출신 인사들을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종합하면 미래사업기획단 신설이 내년 이후 삼성그룹의 경쟁에 대한 불안감과 지난 5년 사업지원 TF 체제의 한계를 고루 반영한 행보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이 같은 고민도 결국 이재용 회장 거취 문제를 넘어서진 못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현호 부회장의 사업지원 TF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 선고는 내년 1월 26일 나온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삼성전자가 미래사업기획단 신설 이후 조직 개편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장에선 내년 1월 재판부 판결 전까지 미래사업기획단의 뚜렷한 역할과 권한이 주어지기 어려울 거란 시각이 많다. 그룹 무게추가 '관리'의 사업지원 TF, '혁신'의 미래사업기획단 중 어디에 실릴지 재판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번 삼성그룹 연말 인사는 양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만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 이하 판결을 받아내지 못하면 재판은 물론 그룹의 정중동 행보가 재차 장기화할 수 있다. 비교적 양호한 판결을 끌어내더라도 이사회와 별개의 옥상옥 조직이 그룹 의사결정 체계를 왜곡시킨 부담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출신 한 인사는 "AI에선 존재감이 미미하고 캐시카우인 D램에서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까지 뒤처진 상황이라 그룹 전반이 올해 인사를 중요하게 봤는데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룹 내부에 누적된 사업지원 TF에 대한 불만에도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얘기라 내년 불안은 더 커진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