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안정' 방향 잡았는데...내년 '연착륙'일까 '침체'일까 눈치보는 증시
입력 2023.12.14 07:00
    내년 금융시장 핵심 키워드 '디스인플레이션'
    경기가 적당히 식을지, 침체로 이어질지가 관건
    물가지수보단 경기 지표 영향력 점점 더 커질 듯
    상황 나은 韓, 中 경기 침체 변수...환율 주시 필요성
    • 2024년 금융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점진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며 그간 금융시장을 억눌러 온 위협 요인이 줄어드는 가운데, 앞으로는 다시 경기가 '연착륙'할지, '침체'할지를 두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주식ㆍ채권ㆍ외환 가릴 것 없이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내년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선반영한 상황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떨어진 대신, 고용ㆍ실업률 등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졌다. 내년엔 전체적으로는 올해보다 나은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표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단기적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시간 12일 발표된 미국 11월 CPI는 전년동월 대비 3.1% 상승해 예상치와 부합했다. 올해 1~2월 CPI 상승률이 6%대로 높았고,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선 아래로 안정화한 것을 고려하면 내년 초엔 CPI 상승률이 정책 목표치인 2%대로 무난하게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7월 9.1%까지 치솟으며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겼던 '인플레이션' 이슈의 파급력이 현저히 약해진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완화하는 '디스인플레이션'이 상수(常數)가 된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경기의 방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 주요국들이 지난 2년간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해 인위적으로 경제활동을 제약, 물가를 억지로 잡아 세운 것인 까닭이다. 

      실제로 미국 경기는 둔화하고 있다. KB증권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공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경기평가 보고서인 '베이지북'의 첫 문장은 '경기 둔화' (economic activity slowed)였다. 이달 초 발표된 11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46.7로 13개월 연속 위축세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는 "경기가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전자제품), "비용 측면에서 2024년 전망이 어렵다"(화학제품), "수주 잔고가 감소했다"(기계) 등의 표현이 크게 늘어났다.

      경기가 식으며 물가가 안정화하는 가운데 경제는 성장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경기가 냉각을 멈추지 못하고 침체로 이어질지 여부가 핵심이다.

      최근 주가와 금리의 향방은 모두 이 같은 '지표에 대한 해석'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일 미국 증시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이날 11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이 19만9000건 늘어나 컨센서스(예상평균치) 18만건을 상회했다는 소식에 미 증시는 하락 출발했다. 

      고용지표를 통해 경기가 '예상외로' 단단하다는 증거가 나오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거란 실망감이 매도세를 촉발한 것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 미국 국채 선물에 반영된 기준금리 첫 인하 시점 컨센서스 역시 내년 3월에서 5월로 늦춰졌다.

      이 같은 흐름은 오후 들어 바뀌었다. '좋은 게 좋은 것'(good is good)이란 심리가 작용하며 다시 위험자산인 주식에 매수세가 들어온 것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예상보다 덜 악화하고 있는 고용시장이 '연착륙' 가능성을 높여줄 거란 인식이 확산하며 결국 미국 3대 지수는 모두 상승 전환한 채 거래가 마무리됐다.

    • 하이투자증권은 "금리 인상은 끝났고 이제 언제 인하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는데, 기준금리를 인하해줄 때까지 시장은 인하를 대기하며 장기 금리를 낮게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확실한 디스인플레이션과 잘 모르겠는 리세션(경기 침체) 사이에서 시장은 움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상황만 따로 떼어 보면 미국보다 더 희망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며 안정되고 있다. 지난 10월 4.4%까지 급등했던 국채 10년물 금리가 3.5%대로 떨어지는 등 '금리 충격'도 진정되는 분위기다. 반도체 수출이 14개월만에 증가세로 돌아서고, 10월 경상수지가 68억달러 흑자로 2년래 최대 수치를 기록하며 물가 안정ㆍ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환율의 움직임을 보면 아직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라는 평도 나온다. 1200원대 후반까지 강세를 보였던 원달러환율은 최근 다시 1320원대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는 중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꼽힌다. 중국 소비자 물가는 최근 3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하며 '디스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 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데다, 외국인 자본 유출로 인해 항셍지수 및 홍콩H지수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증시 일각에서는 11월 중순 이후 코스피 지수가 2500선 안팎에서 혼조세를 보이고 있는 원인으로 대주주 양도세 이슈와 더불어 중국발 경기 침체 리스크 가능성을 지목하기도 한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최근 원달러 환율 약세(원화 환율 상승)는 중국의 경기에 대한 우려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중국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대체 통화)인 원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중국이 경기 침체에 빠진다면 주요 교역국인 우리나라도 영향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15일 발표 예정인 중국 소매판매ㆍ산업생산ㆍ실업률 지표가 일정부분 국내 증시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