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L '블랙 프라이데이' 앞두고 부동산시장 눈치게임 시작
입력 2023.12.14 07:00
    주거·비주거 막론하고 PF 부실…PF NPL 급증
    대주단-운용사, 가격 눈높이 여전히 차이 나
    운용사 "일단 대기. PF 침체기에 급할 것 없어"
    늘어날 소송·분쟁 준비하는 로펌…"난전 발생 가능"
    정상 여신 문제 될까…부정 감사 걱정하는 회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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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내년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부실 우려가 본격 현실화하면서, 경공매 시장이 활성화할 공산이 큰 상황이다. 특히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PF 지원책이 해당 시기를 기점으로 변화할 수 있어서다. 모든 PF 사업장에 대해 대출 만기 연장을 해줘야 한다는 기조에서,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삼는 등 옥석 가리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짙다. 시장 참여자들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올해 국내 NPL(무수익여신) 거래 규모는 약 5조2000억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뤄진 거래 규모(2조2400억원)를 2배 이상 넘어섰다. 부동산PF 관련 NPL 규모만을 추리기는 한계가 있지만, 부동산 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4분기부터 선순위 대출채권 위주로 PF NPL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내년엔 규모가 더 커질 거란 전망이다.

      지금으로선 물류창고와 같은 비주거용 PF 사업장 관련 NPL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류센터는 국내 주요 출자자(LP)들이 대출금 회수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내 실물 자산 중 하나다. 선매입 약정 이행·임차인 확보·PF 대출금 회수 등 운용사·시행사·대주단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물류센터 자산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간의 신선식품 배송 수요 급증을 반영해 착공한 물류센터의 공급이 올해부터 본격 늘었다. 수요 대비해 공급이 많아지면서 공실률이 증가했다. 임차인의 수요가 크게 줄어 물류창고 가치가 하락했다. 개발원가(금리·토지비·공사비 등)는 높아져 부담이 가중됐다.

      데이터센터와 지식산업센터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수도권에 치중된 공급에 임차인을 확보하지 못해 공실률 관리도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 악화의 영향도 피해 가지 못했다. 

      주거용 PF 또한 지역을 막론하고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 불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남에서도 기한이익상실(EOD)이 다가올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 시행사의 줄도산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다. 

      초고가·초호화 주거시설을 일컫는 '하이엔드' 주택의 인기도 시들고 있다. 다수 사업장은 브릿지론 만기 연장으로 겨우 숨통을 트고 있으며, 완공된 사업장도 입주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EOD 위기에 놓였던 '르피에드 청담'은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겨우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르피에드 청담이 경·공매 시장에 나오더라도 유찰 위험이 크니 이자수익이라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방은 준공하더라도 분양이 이뤄지지 않아 대주단이 상환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토교통부의 주택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224가구로 지난 2021년 2월(1만779가구) 이후 최대치다. 이 중 지방은 8270가구로 전체의 8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대비 충남은 30.9%(643→842가구) 늘었고, 대구는 26.8%(712→903가구) 늘었다.

      경공매 시장을 찾는 움직임도 늘었다. 서울의 법원 부동산 경매 신청은 9년 만에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했다. 법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의 5개 법원에 접수된 민사집행 강제·임의경매 사건은 총 9457건으로 작년 동기 6491건 대비 36.4% 증가했다. 2014년(1만1644건) 이후 최대치다. 

    • PF NPL이 점차 쏟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적정 가격을 두고 매도인(대주단)과 매수인(운용사)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PF정상화 지원 펀드가 10월 가동했지만 계약이 체결된 사업장은 서울 중구의 삼부빌딩 한 곳뿐이다. 펀드 투자가 지지부진한 이유 역시 가격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여주려 했던 당국의 목표 역시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대주단은 굳이 가격을 낮춰 매각해 손실을 보느니, 대출 만기 연장 등의 방법으로 일단 '연명'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내년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이 거론되고, 건자잿값 상승 폭도 안정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중·후순위 대주단의 만기연장 의지 또한 강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공사 비용이 높아 개발사업을 진척시킬지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브릿지론을 연장해 버티다가 내년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공사비도 떨어진 이후 본PF로 전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도하려는 분위기다"며 "그럼에도 사업 진행이 안된다면 그 이후에는 지금과 달리 EOD를 통보하기 전 대주단끼리 합의하기도 수월해질 것"이라 밝혔다.

      물론 대주단도 결국에는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인지하는 분위기다. 매크로 환경이 극적으로 좋아지기를 바라기만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주단은 최근 본PF로 전환할 때 금리를 작년 7~8% 대비 3배 가까이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주단뿐만 아니라 PF 사업에 에쿼티(지분)로 투자한 수익자들도 만기연장 시 펀드 운용사에 운용보수를 낮추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PF NPL을 떠안을 운용사 등의 매수자는 대주단의 눈높이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시장을 관망하며 채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최근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IBK금융그룹은 총 1500억원 규모의 PF NPL 정상화 목적의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나섰다. 펀드 조성을 통해 부실 위험에 직면한 PF 사업장의 정상화를 도울 계획이다. 투자 대상은 PF 사업장의 선순위 채권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외에도 PF 관련 채권 매입을 위한 펀드가 조성돼 왔다. 캠코의 PF정상화 지원 펀드 외에도 9개 캐피탈사(신한·하나·KB·우리금융·IBK·메리츠·BNK·NH농협·DGB)가 1600억원을 출자해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 펀드를 조성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에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유암코·대신F&I·하나F&I·우리금융F&I 등 NPL 투자전문사들은 NPL 매입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을 잇달아 진행했다. 유암코가 하반기에 회사채를 두 차례 발행한 금액만 8000억원이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도 대응에 나섰다.

      이미 주요 법무법인들은 작년 말 부동산 리스크에 대응하는 조직을 꾸려왔다. 작년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침체가 본격화될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다만, 올해는 시장 참여자 사이의 분쟁이 예상보다 적었다. 부동산 연착륙을 꾀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이라는 평가다

      내년은 시행사·시공사·금융사·신탁사·지역주택조합 등 각 시장 참여자끼리 손실을 피하고자 법적 다툼과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부동산 호황기 때 허술하게 작성된 계약서가 많다 보니 이에 따른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사업장의 계약서에서는 경·공매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계법인의 내년 화두로 PF 부정 감사가 꼽힌다. 금융기관의 PF 건전성 지표에서 부실 조작 및 미반영 등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책임은 해당 금융기관을 감사한 회계법인에도 돌아갈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고정 이하 여신으로 분류될 일부 자산이 정상 여신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계법인은 금융사에 적절한 수준의 충당금을 쌓으라는 조언 정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사는 증자하거나 충당금을 쌓으며 위기에 대비해야 할 만큼 내년의 모든 관심은 PF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연착륙을 꾀하는 당국의 개입으로 PF 시장이 예상보다 잠잠했지만, 내년에는 더 버티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