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EUV 입도선매에 뒤늦게 ASML 접촉한 삼성…"그래서 수주는 언제?"
입력 2023.12.20 07:00
    인텔, 2년 전 물량 선점…경쟁사 2025년까지 대기해야
    삼성, ASML 맞손 잡으며 대응…파운드리 3파전 본 궤도
    아직은 TSMC·삼성 '양강'…인텔 역량 입증시 판 바뀔지도
    애플·엔비디아 여전히 TSMC行…삼성 내년 성과증명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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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텔이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선점한 가운데 삼성전자도 공급사인 ASML과 협력 강화에 나선다. 인공지능(AI) 칩 시장이 춘추전국에 들어서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 역시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인텔이 내년 EUV를 도입한 선단공정 검증대에 들어서는 만큼 TSMC와 양강 구도를 펼쳐 온 삼성전자도 고객사 확보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해졌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삼성전자는 네덜란드 ASML과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개발센터 설립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가 1조원(약 7억유로)을 들여 차세대 노광 장비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High NA) EUV 노광 장비 개발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하며 끌어낸 성과로 조명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ASML과의 협력 강화에 나선 건 인텔이 이미 차세대 공정 장비를 선점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ASML이 2025년 이후 공급 가능한 NA EUV 노광 장비 잠재 물량을 두고 대만 TSMC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노광 장비는 로직과 같은 고부가 비메모리 반도체 수주전에서 핵심 경쟁력으로 통한다.

      인텔은 지난 2021년 ASML로부터 하이 EUV 노광 장비 5대를 독점 공급받기로 계약해 내년까지 5대를 확보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추격전에서 장비 확보를 중요 과제로 내건 팻 겔싱어 최고경엉자(CEO)가 ASML 측에 직접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지난 2년 동안 EUV 장비 확보에 사활을 걸어온 터라 삼성전자와 TSMC의 입고 계획이 더 빡빡해졌다"라며 "내년 이후 인텔의 파운드리 재진입에 따른 3파전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AI 시장 개화로 팹리스(반도체 설계) 간 전쟁이 예고된 터에 파운드리 3사의 경쟁도 본 궤도에 오르는 형국이다. 현재 칩 시장에선 챗 GPT와 엔비디아의 서버용 그래팍처리장치(GPU) 이후 새로운 AI 반도체가 쏟아지고 있다. 엔비디아 같은 공급자(팹리스) 외 소비층이던 빅 테크들까지 직접 AI 반도체를 설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는 파운드리 3사의 잠재 고객으로 꼽힌다.

      당장 기술력만 놓고 보면 아직까진 TSMC와 삼성전자가 선단공정에선 양강 구도를 펼치고 있다.

      인텔이 차세대 공정 장비 선점에서 치고 나갔다곤 해도 파운드리 재진입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났을 뿐이라 내년 시장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3nm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부터 삼성전자와 TSMC는 각기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했는데, 최근 TSMC가 생산한 애플의 최신 칩이 발열 문제를 드러내며 삼성전자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경쟁력이 재평가 받는 상황이기도 하다.

      인텔의 경우 이제 막 EUV를 도입한 첫 제품을 출시한 참이다. 

      14일(현지 시각) 7nm 공정으로 자체 설계, 생산한 중앙처리장치(CPU) 메테오레이크를 출시했다. 메테오레이크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EUV를 적용한 제품을 속속 출시할 예정이다. 메테오레이크에 대한 시장 반응이 나쁘지 않지만, 수주 기반인 파운드리로서의 역량은 내년 3nm 이하 선단공정 결과가 나와봐야 증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인텔이 내년 이후 3nm 이하 공정에서 역량을 입증할 경우 단숨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빨리 3nm 공정에 진입했으나 이후 이렇다 할 대형 고객사 확보 등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전공정에 해당하는 선단공정 미세화 경쟁에 집중하며 레거시(구형) 공정이나 패키징과 같은 후공정 대응에 미온적이었던 것이 패착으로 꼽힌다. 선단공정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음에도 올 들어 애플 외 엔비디아까지 큰손들의 TSMC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공정 미세화에 집착하며 레거시 공정을 비워버린 터라 팹리스들이 공장 견학만 한 뒤 대만으로 떠나버리는 상황"이라며 "EUV를 적용한 초미세 공정에서 TSMC 외 인텔까지 대안이 생기면 팹리스들이 삼성전자를 찾을 유인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EUV 장비가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레거시 공정 역량에서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았었다. 삼성전자가 EUV를 도입한 7nm 공정에 들어섰을 당시에도 동일 웨이퍼 면적당 트랜지스터 밀도는 인텔의 10nm 공정이 근소하게 앞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텔이 EUV를 도입하며 3nm 이하 공정에 진입하면 양사 공정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내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객사 수주 등 특기할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단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인텔은 파운드리에서 TSMC가 확보한 대형 고객사 외 미국 현지에서 새로 등장하는 스타트업, 유럽 아날로그 반도체사 등 고객사를 모셔오기 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라며 "삼성전자가 내년 선단공정 수주에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TSMC 추격 이전에 인텔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더 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