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요구에 증자폭 키우는 하림…HMM 인수전 FI로 둔갑한 NH증권
입력 2023.12.22 07:00
    産銀, 하림에 '팬오션 자본 늘리고 차입 줄여라' 제시
    '승자의 저주' 회피 위한 증자 확대…매각 명분에 도움
    인수 부담 상당 부분 팬오션 주주에게…주가는 3년내 최저
    최종 부담은 주관사 NH證으로…"사실상 FI 역할"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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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하림그룹이 HMM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팬오션 조 단위 유상증자를 추진할 전망이다. 인수자의 자본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만큼 증자 규모를 키우고 차입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의 HMM 매각 후 고민과 하림그룹의 인수 부담을 팬오션 일반주주가 나눠 지게 되는 구도다. 팬오션의 주가가 급락하며 증자 부담이 커진 상황인데, 최종 책임은 증자를 주관한 NH투자증권이 부담하게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21일 M&A 업계에 따르면 HMM 매도자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하림그룹 컨소시엄은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위해 세부 거래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 하림그룹은 HMM 지분 약 57.9% 인수가격으로 6조4000억원을 써냈다. 아직 유동적이지만 현재로선 하림그룹이 5조원 이상, 재무적투자자(FI) JKL파트너스가 1조원 안팎을 마련하는 조달 구조가 거론되고 있다.

      HMM 매각은 초반엔 인수자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지만 이후엔 인수자의 자본력에 초점이 모아졌다. 차입성 자금을 많이 쓸수록 하림그룹의 상환 부담은 물론 향후 해운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이에 산업은행이 팬오션의 자본 부담 비율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하림그룹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HMM 인수주체 팬오션의 9월말 연결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5700억원에 불과하다. 영구채 발행 및 각종 자산 매각으로 자본출자금(Equity)을 조달하되 나머지는 금융권에서 확보한 3조4000억원 규모 인수금융, FI 유치 등으로 마련할 예정이었다. 팬오션 유상증자는 이후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카드로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런 구조로는 차입성 자금 비중이 너무 높아지고 인수자와 HMM의 사업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산업은행이 팬오션의 증자를 요구했고, 하림그룹도 이에 화답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인 증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팬오션이 조 단위 유상증자를 하면 인수금융 부담은 줄어든다. 담보대출 비율이 줄어드는 만큼 상환 계획이나 대주단 구성, 재매각 등이 수월해지는 덕이다. 실제 인수금융 활용 규모는 2조원대로 줄어들 가능성이 거론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에서 HMM 내부 현금이 활용될 여지는 물론 차입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라며 "팬오션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시장에서 부족한 돈을 걷겠다고 하면, 거래 당사자는 물론 인수금융 주선사들의 자금 상환 걱정까지 덜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하림그룹의 인수대금 조달을 나눠지게 된 팬오션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21일 팬오션 주가는 장중 3% 이상 하락해 3년내 최저점을 기록한 뒤 3860원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약 2조원 수준이다. 전체 인수대금에서 자기자본 조달 비중을 충분히 높이기 위해 필요한 유상증자 규모는 현 시가총액보다 클 것으로 거론된다. 대주주인 하림지주가 지분율(54.72%) 대로 증자에 참여하더라도 절반 가까이는 시장에서 모아야 하는데, 기존 주주의 참여를 유도하기 쉽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많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M&A를 성사시키기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격"이라며 "하림그룹이 부족한 자금을 주주들에게 채워달라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결국 산업은행의 요구를 하림그룹이 받아들였다기보다는 팬오션 일반 주주가 떠안게 된 구도다. 이들마저 HMM 인수 이후 팬오션의 주가 전망을 어둡게 본다면 증자 성사를 낙관하기 어려워진다. 시장에선 현재 팬오션의 주가 흐름이 이미 증자에 대한 일반주주들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에선 명확한 주주가치 희석 비율을 알기 어렵다며 팬오션에 대한 분석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팬오션 증자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 그 책임 부담은 다시 유상증자를 주관해야 하는 NH투자증권에 돌아가게 된다. NH투자증권이 HMM 인수에서 사실상 FI에 버금가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앞서 NH투자증권은 인수금융 출자확약(LOC) 외 팬오션 증자 시 이를 주관하기 위한 확약도 함께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도 인수금융 외 하림그룹이 직접 마련한 자금이 부족하면 팬오션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은행 요구로 이번 거래에서 팬오션 증자는 부족자금을 채우는 용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기존 팬오션 주주들의 유상증자 참여가 미온적일 경우 NH투자증권은 실권주를 떠안아야 한다. NH투자증권이 HMM을 인수하는 팬오션의 주요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권주 부담을 최소화하자면 증자 흥행이 필수적이나 3분기 이후 HMM의 실적 하락세가 가파르다. 증권가는 올해와 내년 HMM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5693억원, 3711억원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작년 실적의 3~5% 수준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팬오션 주주들이 산업은행과 하림그룹 대신 부담을 지기 싫다고 하면 결국 증자 주관사가 이를 책임지고 인수해야 한다"라며 "팬오션과 HMM의 결합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NH투자증권이 FI로 등극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라고 설명했다.